[이효수 경제칼럼] 신뢰 붕괴가 위기를 부른다
[이효수 경제칼럼] 신뢰 붕괴가 위기를 부른다
  • 승인 2019.11.17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사회적 신뢰의 붕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신뢰는 크게 개인 간 신뢰와 사회적 신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개인 간 신뢰는 개인 인격체의 신뢰성에 기초하므로, 개인의 문제로 끝난다. 이에 비해 사회적 신뢰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 관한 국민이나 시민의 믿음 내지 상식적 기대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회적 신뢰는 국가 사회의 질서를 안정시키는 가장 중요한 사회자본이다.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면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국가가 혼돈과 위기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 신뢰 자본이 약화되면 서로를 믿지 못하므로 거래비용이 증가하고, 규제를 강화하므로 규제비용이 증가한다.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므로 정부 정책 비용은 증가하고 정책 효과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면, 시민들은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납부한 세금이 올바로 쓰이지 않고 낭비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조세저항 심리가 확산된다. 패거리 문화가 확산되고, 증오와 비방의 선동정치가 판을 치게 된다.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관용적이지 못하고, 사회구성원 간에 상부상조가 안된다. 신뢰가 붕괴된 사회에서는 특권과 반칙,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기 때문에 올바른 양심을 갖고 정당한 노력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회의 혁신성과 창의성의 토양이 황폐화되어 미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자유민주주의 발전, 시장경제발전, 국부의 축적이 어려워지는 이유이다.

그래서 국민적 신뢰를 잃은 정부는 정부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를 부른다. 특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뢰의 붕괴는 정부와 사회 지도층에서 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국민들이 대통령과 장관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회가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과 파당의 이익에 함몰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학부형과 학생이 교사의 교육 내용에 대해 불안해하고, 대학 입시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신뢰의 붕괴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진행된다. 하나는 거짓과 위선이다. 다른 하나는 상식에 벗어나는 언행이다. 조국 사태는 일반인의 상식을 현저히 뛰어넘는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가혹하리만큼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 내면서 마치 정의의 사도이자 공정 가치의 전도사처럼 행동했던 사람이 자신은 자신이 비판했던 행위나 그보다 훨씬 잘못된 행동을 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위선의 극치를 드러냈다. 그리고 인사검증 과정 및 공식 석상에서 한 말이 언론에 의해 거짓으로 입증되고 있다.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면서 이런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검찰 수사와 언론에 의해서 그의 거짓과 위선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일군의 사람들은 “조국 수호”를 외치면서 주말 시위를 이어갔고, 심지어 여당도 연일 조국 일가를 수사하는 검찰을 압박했다. 공정과 정의, 도덕적 가치를 내세워 적폐 청산을 외쳐 온 그들이 자기 편의 비리에 대해서는 비이성적 대응을 하면서, 조국 사태는 개인적 위선을 넘어 집단적 위선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조국 사태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있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신임 검찰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말에 많은 국민들은 검찰개혁에 높은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조국 가족의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검찰과 사법부의 행태는 일반 피의자와는 다른 특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들이 언론에 의해서 연일 보도되고 있다. 왕권 사회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므로 모든 피의자들도 동등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 휴대폰과 자금 추적에서도 모든 피의자에게 동일한 기준으로 압수 수색 영장의 발급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만일 법원이 영장 발급에 공정성을 잃고 있다면, 법원은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서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쫓기듯 내놓고 있는 법무부의 검찰 개혁 방안들은 검찰 개혁의 핵심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오히려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검찰 개혁의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리고 소위 상류층 일각에는 심각한 불공정 카르텔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내신 중심의 대학 수시 입시제도는 시험 위주의 획일적 인재 육성 시스템을 보완하여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잠재적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입시제도이다. 대표적 지식인인 교수가 이런 입시제도를 악용한 사례도 밝혀졌다. 교수가 자신의 자녀나 친구 자녀의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고등학생을 자신이 주도한 논문에 공저자로 넣어주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심지어 ‘스펙 품앗이’라는 말까지 있다. 일부 상류층들이 불공정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중요한 관문 가운데 하나인 대학입시에서 사회 상류층에 의해 심각한 불공정 게임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허위 스펙을 이용하여 입학한 학생과 스펙 조작에 관련된 교수에 대한 해당 대학의 미온적 접근이다. 대학은 자유, 정의, 진리의 구현을 기본 가치로 한다. 대학이 대학의 기본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교수와 입시부정에 대해서 매우 단호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통령과 장관 및 고위 공직자들은 국민에게 절대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특히 권력의 유지나 권력자들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의도적 거짓말에 대해서는 매우 무겁고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들의 거짓말은 사회적 신뢰를 매우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파괴시키고, 잘못하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