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위 툭 튀어오른듯.. 생동하는 에너지
평면 위 툭 튀어오른듯.. 생동하는 에너지
  • 황인옥
  • 승인 2019.11.21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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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대구 '투리 시메티'展
이탈리아 모노크롬 회화의 대가
캔버스 화면 위 도드라진 타원형
빛에 따른 다양한 변주에 '시선'
투리 시메티 작
투리 시메티 작

 

그림이 이보다 은밀할 수 있을까? 평면 위 타원형에 입체미가 물씬 묻어나는데 흡사 현실 너머의 마법처럼 은밀하다. 붓으로 그린 착시효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서면 빛의 변화에 따라 변주를 거듭하는 명암과 그림자가 싱긋 웃는다. 붓의 조화로 인한 착시효과가 아니라 어떤 장치에 의해 형성된 현실의 입체인 것. 회화가 입체에 의한 긴장감으로 한껏 물이 올르고 있다. 작가 투리 시메티의 작품인데 리안갤러리 대구 전시장을 점령했다. 크기와 형태, 배치에 변화를 준 다양한 타원형 부조적 회화 작품 20여점이 그의 두 번째 국내 개인전에 모였다. 

시메티는 2017년 리안갤러리 서울 전시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호평을 받았다. 작가의 국내 첫 전시였는데, 호평을 이끈 원동력은 그가 모노크롬 회화의 대가라는 점이었다.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는 모노크롬은 한국 단색화의 뿌리다. 단색에 긋기나 칠하기를 무한반복하며 물성을 정신성으로 치환하는 태도가 한국의 단색화라면 서양의 모노크롬은 단색에 집중한다. 방법론에서 서로 길을 달리 하지만 뿌리가 같다는 점에서 모노크롬 회화의 대가인 시메티의 첫 개인전에 호평이 쏟아진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탈리아 시실리 알카모 출신인 시메티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로마에서 앙포르멜의 대가 알베르토 부리(1915~1995)와 교류하며 미술을 시작했고, 앙포르멜 꼴라주 작업을 시작으로 점차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찾아나갔다. 타원형의 형태는 1960년 이후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특히 그는 1960년대 유럽 전역에서 활발히 활동한 전위 예술 그룹 '제로 아방가르드 그룹(Zero Avant-garde Group)'의 일원으로 루치오 폰타나 (1899~1968), 피에로 만조니(1933~1963) 등과 함께 캔버스 화면에 대한 도전적 실험을 선보이며 모노크롬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투리 시메티 작
투리 시메티 작

 

시메티 작업의 핵심은 캔버스 화면. 그림을 그리지 전에 캔버스에 작가의 행위가 구현된다. 타원형 나무 모형을 캔버스 뒷면에 부착하고 캔버스 천을 씌워 팽팽하게 당기는 작업이다. 색은 이 작업이 마무리 된 후 시작된다. 이때 2차원 캔버스 뒷면에 부착한 비가시적인 나무 모형에 의해 형성된 3차원 타원형은 가시적인 환영적 공간으로 드러나고,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에 의한 드라마틱한 변주는 3차원을 강화한다. 이 이율배반적이고 모순된 상황이 이번 전시 제목을 환각, 환영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fantasma'와 손짓 표현을 뜻하는 'mima'를 합성한 'fantasMIma'가 된 배경이다.  

캔버스 천 아래에서 천 위의 입체를 관장하는 프로세스는 긴장감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의 흔적을 앞에서 묘한 느낌을 받는 것. 이 긴장감이 끊임없는 질문을 양산하게 된다. '작업방식이 어떠한지', '숨겨진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 순간 고요할 것 같았던 평면에서 분출하는 에너지와 만나게 된다.  

성신영 리안갤러리 큐레이터는 "서구의 기독교적 전통에서 빛은 부재하는 존재의 출현을 상징하며 그림자는 사라짐을 의미한다. 신은 물리적으로는 부재하지만 늘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언급했다. "시메티가 기독교적 상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부재하는 실체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빛을 사용한 것 같아요. 그림자가 빛의 배후인 것 처럼요."

투리 시메티의 작품은 밀라노 프라다(Prada) 재단, 투린 근현대 시민 갤러리, 볼자노 근현대 미술관, 밀라노 20세기 미술관, 덴마크 현대 미술관, 독릴 Schaufler 재단, 네덜란드 볼린덴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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