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질서를 무시하는 사람들
행정질서를 무시하는 사람들
  • 승인 2019.11.21 02: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차가 밀려 꼼짝하지 않는다. 도심의 공사 때문이다. 예고도 없이 '공사중'이라는 표지판을 세워 놓고 화살표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교통량이 많은 대낮에 꼭 공사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공사를 하는 측은 저들 편의만 생각하고 무슨 큰 권한이라도 행사하는 모양새다. 운전자들이 겪는 스트레스, 시·공간적으로 주는 사회적 손실 생각은 손톱만치도 없다. 줄지은 차에 끼어 기다리면서 질서라는 단어를 떠 올린다. 자연의 질서는 늘 그대로다. 천재지변이 있어도 한정된 틀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식물세계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어 그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질서는  다양한 형태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수단이며 약속이다. 인도여행에서 얻은 기억이 있다.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서둘렀지만 길이 엄청 복잡했다. 기이하게도 도로에 교통신호기가 없었다. 인력거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요지경이다. 밀리는 군중 속으로 자동차도 다니고 소도 어슬렁거린다. 도로를 꽉 메운 사람들이 차가 오면 자연스럽게 길을 터주고 차도 서행한다. 짜증내는 사람이 없었다. 인구가 많은 나라, 인도인이 터득한 생활의 지혜요 교통질서다. 교통신호에 따라 길을 건너고 차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문명인의 상식이다. 교통신호기는 도로의 질서를 잡아준다. 국가라는 큰 조직을 경영하는 요체는 법이다. 법은 바로 질서다. 

민주주의사회는 법질서에 의해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법도 늘어나고 그 종류도 다양해진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모든 양상을 법으로 다 규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질서라는 큰 틀 속에서 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법망을 묘하게 피해가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정치인과 행정인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은 그들을 불신한다. 최근의 몇 가지 사례를 보면서 한국은 진짜 민주주의가 덜 된 나라, 법질서를 편의주의로 해석하고 처리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물러나자 곧 바로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차관을 불러 검찰개혁 지시를 하고 직접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행정체계상 보통 때는 별 볼일 없는 차관이 얼떨결에 대통령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므로 장관이 공석이니 그럴 수도 있고 위법도 아니다. 그러나 껄끄럽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이 차관에게 직접 지시하는 경우를 본 일이 없다. 같은 일을 해도 각부 행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를 통했다면 보기 좋았을 것이다. 청와대의 참모는 뭐 하고 있었나. 법의 범위를 넘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처사는 행정질서를 무시한 것이다. 누구나 검찰조사를 받게 되면 검사의 심문에 응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도 조국 그 사람은 검사의 묻는 말에 입을 봉했다. 묵비권도 피의자의 권리지만 검찰에 가면 성실하게 답하겠다고 큰소리치던 그는 검찰행정의 질서를 싹 뭉개버리는 오만함을 보였다. 법을 잘 활용하는 그는 다른 구치소에서 부인과 화상 면회를 했다고 한다. 그런 것이 있는지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일을 그는 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면서 서울대학교의 형법학 교수라는 것이 괜히 맘에 걸린다. 

또 있다. 위계질서를 금과옥조로 삼아야 하는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JSA 현역 중령이 청와대 국가안보실 간부에게 선상에서 16명을 살해한 북한 어민 2명을 북송한다는 보고를 한 것은 행정질서를 심히 훼손한 일이다. 정말 웃기는 것은 국방부장관이 이런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누구나 요즘 군의 위계질서가 얼마나 엉망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중령도 그렇지만 청와대가 국방부나 국정원을 뛰어넘은 처사는 행정질서를 완전 무시한 처사다. 대통령의 참모가 관련 부처를 직접 지휘하는 일로 말썽을 피운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국가경영의 질서 같은 것은 염두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법질서로 움직이는 거대한 조직이다. 사회의 모든 공동체 역시 나름의 질서로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공·사조직을 막론하고 법질서를 흩트리는 군상들이 의외로 많다. 법질서를 중시하는 나라가 참 민주주의국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