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바람 살랑대는 들녘에 서서
파란 하늘 뭉게구름 바라보니
촉루 되어 응어리진 서러움이
어느새 눈 녹듯 녹아내린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들
노을 따라 산등성이 오가며
머리 숙인 벼이삭 어루만지고
황금물결 춤추며 노래하네.
정물처럼 그렇게 살리라고
유령처럼 없는 듯 세월 가라던
고약한 아집은 어디가고
사람 사는 세상 손 내밀고 싶어라
◇靑蘭 왕영분= 월간문학세계 시 부분 신인상(03), 한국문인협회 회원, 강화문인협회 회원, 다산문학 대상, 한국미소문학 대상, 개인시집 : 참나리 사계를 살다, 햇살 한줌의 행복, 속삭임.
<해설> 가을 들녘에 서면 만물의 가르침처럼 고개가 무거워진다. 그 서슬 푸른 기상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발 물러나 있는 모습을 보며 비움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오면 간다는 것을 아는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뿌린 것을 거두는 것이다. 너와 내가 힘 모아 다음을 위하여 함께 거두는 것이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