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에 세련미…설백의 달항아리
우아함에 세련미…설백의 달항아리
  • 황인옥
  • 승인 2019.11.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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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점찬 초대전
500년 전통 명맥 이어온 도자
달 향한 인류의 서정 ‘오롯이’
실용·예술 접점 현재적 재해석
천지인 사상 바탕 형태 변주
미니멀한 형상·담백한 문양
도자예술 균형미 끌어올려
이점찬3
도예가 이점찬
 
달로부터
이점찬 작 ‘달로부터’

침묵인가 싶으면 소곤거림도 있고, 전통의 묵직함이 마음을 낚아챘나 싶을 때는 현대의 세련미가 협공을 펼친다. 전시장에 가없는 아름다움을 품은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도예작가 이점찬이 빚은 백자달항아리다. 그의 백자달항아리 20년 사랑이 달처럼 그윽하고 충만하게 내려앉아 있다.

작가가 “어떤 문명권에서도 단일 종목으로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사례는 드물다”며 “500년간 계승·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형성된 달항아리의 에너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백자달항아리에 담긴 역사성을 언급했다. “달항아리에 축적돼 있는 에너지를 21세기는 물론 그 이후 세대에게로 계속 전해져야 해요.”

선조들은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왜 기물인 항아리에 밤하늘의 달을 투영했을까? 단순히 형태적인 유사성 때문이었을까? 그러기에는 인류가 달을 찬미해온 역사가 짧지 않다. 일찍이 달을 향한 인간의 찬미는 동서고금을 넘나들었다. 당송의 문장가 소동파도, 조선시대 풍속화가인 혜원 신윤복도 인생의 희노애락을 달에 비유했다. 물론 이름 없는 민초들의 달사랑도 예술가 못지않았다. 님 그리운 밤이면 보름달에 그리움을 삭였고, 길 떠난 자식의 무사안녕도 정한수 떠놓고 달에게 빌었다.

“달을 향한 인류의 절절한 서정들이 한낱 기물에 지나지 않는 달항아리라는 이름 속에 큰 에너지로 녹여낸것 같아요.”

최근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에서 개막한 이점찬 개인전 제목이 ‘달로부터’다. 달항아리의 내적 근간을 ‘달’에 두고 있다는 선언이다. 작가는 흰 바탕과 둥근 형태라는 보름달의 형태적인 측면을 수용하는 한편, 인류가 달항아리에 투영했던 가없는 경외심까지 달항아리에 투영한다. “그 옛날 선조들이 달에게 빌었던 그 마음을 달항아리에 담아내려 해요.”

이점찬은 전통 도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40년을 바쳤다. 형태의 절제와 변주, 도자와 회화의 접목, 실용과 예술의 접점 찾기 등의 태도로 전통도자를 현대인의 미감으로 조명해왔다. 작가는 도자의 외적 아름다움 못지않게 내면적인 결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천(天)·지(地)·인(人) 사상을 도자에 접목했다. 특히 도자의 기본 구도에 천·지·인 사상을 접목했다. 백자달항아리에도 그 철학은 오롯이 적용됐다. “달항아리 입술 부분인 구연부와 몸체 그리고 몸체를 떠받치는 하단의 굽을 천·지·인이라 상정하고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고 있어요.”

천·지·인 사상을 적용하자 형태적인 변주가 자유로워 졌다. 전형적인 보름달 형태에서부터 길죽하거나 표주박 형태의 모양까지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다채롭고 이채로운 형태들을 설백색이라는 색채로 수렴하며 통일감을 추구했다. 빛나는 광채도, 그렇다고 무거운 어두움도 아닌 고고하고 은은한 설백색을 통해 달항아리의 숭고하고도 신비로운 상징성을 살려냈다. “설백색은 제 마음에 와 닿은 색이라 선택했어요.”

형태 못지않게 문양의 현대화도 중요했다. 단순하게 도자기를 장식하는 문양이라는 인식을 뛰어넘어 현대회화의 세련미까지 아우러고자 시도했다. 문양은 주로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경북 경산시 남산 인근의 사계절 풍경이나 봉황을 선택했다. 작가의 미감으로 걸러진 문양들은 간결미와 담백함으로 드러났다. 미니멀한 형상과 담백한 문양으로 도자예술의 균형미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인의 감성까지 충족하려 노력한 것. 작가가 “문양은 흰색 여백과 대비되게 표현하지만 과하지 않게 처리하려 해요. 하지만 접점 찾기가 쉽지는 않은것 같아요.”

실험적인 시도는 현대도자예술 분야에 주어진 과제다. 작가 역시 이 책무에 순응한다. 구운 도자기 위에 옻칠을 하고 금으로 칠하기도 하는 등 전통에 없던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전통도자기의 현재적 계승을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어요. 2차원 회화를 3차원 도자기에 구현하기도 하고, 옻칠과 금칠도 마다하지 않죠.”

도자기는 예측불허의 예술이다. 작가의 손을 떠나 가마 속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주재자는 불이 된다. 불과 바람과 습기의 협공으로 백자달항아리라는 새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이 조건들은 매번 같을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한다. 미세하거나 큰 폭으로 변수들이 달라진다. 작가는 이 예측불허의 상황에 당황하기보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인간의 삶을 발견하고, 교훈을 얻는다. “가마 속 도자기나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나 희노애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닮아 있죠. 어차피 예측불허라면 즐기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죠?“ 백자달항아리와 백자완, 황후의 잔 등 50여점을 소개하는 작가의 전시는 12월 1일까지. 053-668-1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이점찬은 경상북도 문화재 위원, 경상북도 행정디자인자문위원, 대구시 미술 장식품 심의위원,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며 대구미술협회 회장, 경일대학교 디자인 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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