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기운과 고매한 정신 깃든 글씨 총망라
힘찬 기운과 고매한 정신 깃든 글씨 총망라
  • 김영태
  • 승인 2019.12.02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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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 김만호의 예술세계를 찾아서 (32)-노년기(老年期) 6. 1981(74세)~1983년(76세)
한국 현대서예 대표작가 집성
전국 12인 참여, 1천부 한정판
孟子騰文章句下 등 7작품 수록
지역 서예가 최초 서집
전국 소장자 총 5백여명 파악
각지에 흩어져 碑文 탁본 노력
계명대 도서관 개관 기념 발간
대학, 대형 현판 제자도 의뢰
소헌처세명
신유년(辛酉,1981)에 소헌 선생이 직접 새겨 짓고 쓴 「소헌처세명(素軒處世銘)」, 35.0x135.0cm, 소헌미술관 소장


◇소헌(素軒) 처세명(處世銘) 1981

서예의 기교보다 서예의 도(道)를 중시했던 소헌 선생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 소헌 선생은 살아 간다는 것이야말로 엄숙하고 지극히 어렵다는 말씀을 평소에 자주 하시고는 하셨다. 선생은 늘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사셨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쉽게 생각하면 쉬울지 모르지만 선생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은 신유년(辛酉,1981)에 선생이 직접 지어 써서 현액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교훈으로 다스려 온 소헌(素軒) 처세명(處世銘)이다.

「處世上眞至難 生安樂最上福 治家勤儉爲先 接人謙和是首/ 처세상진지난 생안락최상복 치가근검위선 접인겸화시수

遠不義之財利 戒過量之飮食 恒常己往之非 每念將來之咎/ 원불의지재리 계과량지음식 항상기왕지비 매념장래지구

莫遊酒肆妓館 不近賭場博席 勿起嫉妬於心 莫說讒言于口/ 막유주사기관 불근도장박석 물기질투어심 막설참언우구

施恩德夜夜安 懼法令朝朝樂 果能依此銘言 安樂自永久矣/ 시은덕야야안 구법령조조락 과능의차명언 안락자영구의

辛酉處暑節 素軒銘 書/ 신유처서절 소헌명병서」

해석하면

“세상을 살아가기란 지극히 어려우니,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최상의 복이라. 집안을 잘 이룰려면 근검함이 우선이요, 사람을 접함에 있어 공손하고 화합함이 으뜸이다.

또한 의롭지 못한 재물과 이익을 멀리하고, 지나친 음식 욕심을 경계하며, 항상 이미 지난 잘못들을 살피고, 때때로 장차 올 허물을 염려해야 한다.

주사(酒肆)로 기생 집에서 마구 놀지 말 것이며, 도박하는 자리에는 가까이 하지 말라. 마음에 질투심을 일으키지 말고, 또 남을 헐뜯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은덕(恩德)을 베풀면 밤마다 편할 것이요, 법령(法令)을 두려워하면 아침마다 즐거울 것이니, 과연 이 말을 새기고 산다면 안락함이 저절로 오래 갈 것이다.

신유년(1981) 처서날 소헌 새겨 짓고 아울러 쓰다.”

이 횡액(橫額)은 소헌미술관에 전시되어 보존하고 있다.

이 해(辛酉,1981) 5월에는 제14회 봉강연서회원전(회장,고의환)이 대구시민회관 대전시실(1981.5.1~5.5)에서 열렸다. 회원 64명의 136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소헌 선생은 횡액(橫額) 「茶爐經卷(다로경권)」과 「繫辭(계사) 10곡병」을 격려작품으로 출품했다.

1981년은 경북도 미전(경상북도 미술전람회)이 대구시 미전(대구직할시 미술전람회)으로 분리 독립한 해이다. 소헌 선생은 첫 대구시미전에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제1회 대구직할시 미술전람회는 11월 8일에 대구시민회관 대전시실에서 개최됐다.

 
일진부도
‘한국현대서예대표작가집성’(도서출판 을지사,1981) 43면에 실려 있는 소헌 선생의 작품 「一塵不到(일진부도)」,52.5x166.0cm,1981


◇한국현대서예대표작가집성(韓國現代書藝代表作家集成)

1981년 12월 10일에 「한국현대서예대표작가집성」이 발행되었다. 소헌 선생을 포함한 한국 대표 서예작가 12인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는 서집(書集)이다. 도서출판 을지사(乙支社)에서 발간하였다. 고급 케이스로 장정한 양장본으로 크기 39.0x43.0cm, 196면으로 제작된 당시에는 볼 수 없는 대형의 서예 전집(全集)이었다. 한국의 대표 서예가인 근원(槿園) 구철우(具哲祐),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 소헌(素軒) 김만호(金萬湖),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峰), 일창(一滄) 유치웅(兪致雄), 검여(劒如) 유희강(柳熙綱), 철농(鐵農) 이기우(李基雨), 학남(鶴南) 정환섭(鄭桓燮), 동강(東江) 조수호(趙守鎬), 어천( 泉) 최중길(崔重吉),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가나다 성명순> 이상 12인의 작가 86점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소헌 선생의 작품은 「孟子騰文章句下(맹자등문장구하)」 외 7작품이 12면(p37~p48)에 걸쳐 실려 있다.

이 집성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송지영(宋志英) 선생의 추천사와 문학박사 이가원(李家源,성균관대 교수)의 서문(序文)이 실려 있다. 김재수(金在秀) 발행인(도서출판 을지사 사장)은 “1천부 한정판으로 고유번호를 붙여놓아 자손 후대에 남겨줄 가보(家寶)적인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집념 하나로 전국을 누비며 대가(大家)들의 사저(私邸)와 대작(大作)의 소장지를 찾아 한국 서단(書壇)의 축복된 결정(結晶)이 맺어지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라고 발문(跋文)을 썼다.


 
계명대 동산기념도서관 개관기념
계명대 동산기념도서관 개관기념으로 발간된 ‘소헌김만호서집’ 출판기념식에서 소헌 선생의 장남인 김상대(金相大)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소헌김만호서집(素軒金萬湖書集) 발간, 1982.6.30

1982년에는 「소헌김만호서집(素軒金萬湖書集)」이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동산기념도서관 개관기념’으로 발간되었다.

계명대학교에서 중앙도서관을 건립하면서 도서관의 명칭을 동산기념도서관(童山記念圖書館)으로 명명(命名)하고 도서관 정면의 대형 현판 제자(石彫,자당 55.0x55.0cm,7자)를 소헌 선생에게 의뢰해 왔다. 동산(童山)은 신태식 총장의 아호(雅號)이다. 소헌 선생과 신태식(申泰植,1909~2004)총장은 청송(靑松)에서의 어릴적 친구로 서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여서 대구에서 가끔 조우하고 있었다. 그는 부친이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영향으로 선교사가 세운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을 했다. 1961년에 계명기독대학을 설립하고 학장과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학교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 서집의 편찬위원은 김영태(계명대 기획실장), 윤구호(계명대 중앙도서관장), 김남현(계명대 출판부장), 배인호(계명대 미술대교수), 장진필(계명대 사진학교수), 고의환(봉강연서회장), 이수락(한학자,홍도학원장)이며, 편집위원은 소헌 선생의 문하생인 김대환, 우상홍, 김상은, 이정배, 김영훈, 유덕길, 양태지, 김기탁, 박혁수 제씨로 구성되었다.

서집의 편집위원은 몇 년간을 자진해서 지역별로 나눠 자료수집을 했다. 경남지방은 김영훈, 경북 남부지방은 김상은, 경북 북부지방은 이정배, 대구지방은 양태지가 맡아주었고 박혁수는 비석 탁본과 현판의 사진 촬영 작업을 했다. 이들은 자료를 수집 정리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작품 소장자 목록을 작성하고 5백여 명이 소장하고 있는 7백여 점을 찾아 촬영해야 했다. 하지만 전체 작품을 다 찾기는 어려웠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비문(碑文)을 탁본하는 데는 여간 힘들지 않았다. 탁본과 현판의 사진 촬영을 위하여 현장을 오가며 김영훈, 박혁수의 노력이 컸고, 장진필 교수가 특별촬영을 했다. 원고의 교정 작업은 경북인쇄소와 남산여고 숙직실을 오가며 김영훈 선생과 김상대 교수의 노고가 많았다. 필자도 같이 참여했다.

서집(書集)은 1982년 6월 30일에 발행되었다. 계명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하고 경북인쇄소에서 인쇄를 했다. 책자는 크기가 26×37cm의 양장본으로 케이스를 곁들인 고급판으로 나왔으며 모두 224면이다. 이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서예가의 개인 서집(書集)이었다.

제호(題號)는 소헌 선생이 직접 썼고 ‘동산기념도서관 개관기념’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다. 이 서집의 맨 앞에는 선생의 근영(近影)이 들어가 있고 그 다음에 계명대 총장(당시 정만득 직무대리)의 발간사, 서예가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의 추천사, 심재완(沈載完·영남대 대학원장)박사의 ‘작품해설-소헌의 작품세계’, 고의환(高義煥) 봉강연서회장의 ‘서집 발간에 즈음하여’가 실려 있고, 200여 작품의 ‘서판(書板)’과 ‘인보(印譜)’, ‘연보(年譜)’ 그리고 끝에는 문하생 김기탁(金基卓)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추천사에서 원곡 김기승은 “그의 서(書)는 단아하면서도 웅려하여 속진(俗塵)을 벗어났으니 그간 혜안(慧眼)과 남다른 각고(刻苦)로 인간예술의 응결이 자획마다 지폭마다 유로전개(流露展開)되고 있으니 힘찬 필력과 고매한 정신을 통해서 볼 때 그 조예(造詣)의 깊음을 가히 사량(思量)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했다.

광주에서 1980년에 개최 예정이었던 제5회 영호남서예교류전은 5?18광주사태(1979)의 후유(後遺)로 교류전시회를 하지 못했다. 2년 후 대구에서 5회전(대구시민회관,1982.7.1~7.5)을 가져야 했으며, 소헌 선생의 요청으로 6회전은 그 이듬해인 1983년에 광주의 광주학생회관(4.24~4.29)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 교류전에는 진주의 미성(未醒) 박춘기(朴春起) 선생이 주재하는 진주필우회(회장,정병희)도 함께 참여하였다. 소헌 선생은 이 전시회에 「修道立悳(수도입덕) 癸亥 殷春 第六回 嶺湖交流展 素軒」을 출품하였다.

1983년에 선생은 현대미술관 초대작가로 선임되었고, 한국민족서예대전의 초대작가와 운영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김영태 영남대 명예교수(공학박사,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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