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신라, 20일까지 조각가 최인수 Distance展
갤러리 신라, 20일까지 조각가 최인수 Distance展
  • 황인옥
  • 승인 2019.12.03 21: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흙과 인간은 다르지 않아”
자연에서 존재 본질 발견
재료의 여정 구현에 집중
시공간과 내면 확장 도모
최인수작-멀리서
최인수 작 ‘멀리서(Distance)’
 
최인수_씨앗은자란다느리고빠르게
최인수 작 ‘씨앗은 자란다. 느리고 빠르게’

맨발로 흙을 밟았을 때 발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은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이는 무생물에게도 생명체 못지 않은 교감지점이 있다는 반증이다. 조각가 최인수가 “흙과 인간은 우주의 시간 속에서 같은 존재”라고 언급했다. 우주의 중심이라는 측면에서 인간과 흙을 동일시할 수 있다는 언급이었다. “인간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 속에 인간이 있고, 인간 속에 흙이 있어요. 그 둘은 결국 다르지 않아요.”

작가는 흙에서 물질 이상의 무엇을 발견했다. ‘우주’였다. 이 지점에서 발길에 채이는 하찮은 존재인 흙에서 광활한 우주를 발견한 배경이 궁금해진다. 무엇이었을까?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가 폭발하면서 지구가 생겼고, 산과 바위가 생겨났다. 바위는 수천년간 햇빛과 별빛과 비바람과 만나면서 흙이 되었고, 산화한 흙은 수많은 생명체를 품어 안으며 대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거대한 바위에서 생명체를 품어 안는 대지의 흙이 되는 긴 여정 속에 우주가 담겨졌다는 것. 작가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듯, 흙 또한 인간과 동일하게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흙’은 “존재의 기원이자 인간이 돌아가야 할 궁극의 고향”이었다.

최근 조각가 최인수의 개인전이 꾸려진 갤러리 신라의 전시장이 고요하고 그윽한 나무의 기운으로 넘실댄다. 2m 남짓한 가느린 느티나무 10여개가 2개의 공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다.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향해 서 있던 생전의 모습 그대로다.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가르고, 파내고, 다듬는 등 작가의 행위가 더해진 나무들이다.

전시제목은 ‘멀리서(Distance)’. 제목에서 거리가 어렵지 않게 연상된다. 어떤 거리일까? “나무에서 우주를 발견할 수 있는 거리”다. 죽은 나무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지극한 아름다움까지 포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가까이 보다 멀리라야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먼 거리에서 봐야 존재가 품고 있는 우주의 기운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

예술가는 개념을 만들고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구현한다. 독자적인 개념이나 형상에 대한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그룹이다. 예술적인 표현에 있어 자기애가 충만하다는 의미다. 최 작가는 예상을 깨고 정반대의 길에 섰다. 조각의 주재자가 되기보다 재료에 귀 기울이는 경청자를 자청했다. 스스로 개념을 설정하기보다 존재 자체에서 본질적인 개념을 찾으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나무(재료)와 작가와의 관계설정에서 나무(재료)를 주체, 작가 자신을 객체로 상정한다.

“저는 물질이라는 재료를 통해 제 이야기나 개념을 펼치려 하기보다 재료가 걸어온 여정을 가시화하는데 집중해요. 그런 과정에서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재료의 본질을 드러내죠.”

재료를 존중해 마지않는 태도는 재료와 처음 만나는 시점에 이미 결정됐다. 최 작가는 흙이나 나무라는 재료를 애써 찾아 헤맨 적이 없다. 그저 우연히 재료들이 그의 곁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왜 흙이었는지, 나무였는지는 저는 잘 몰라요. 그저 작업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우연히 흙과 나무가 제게로 왔죠.” 나무는 죽어서 잘려진 느티나무 가로수를 보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작업의 재료로 가져왔고, 흙의 경우는 심지어 원인조차 알지 못했다.

한낱 미물인 물질에서 존재의 본질을 발견하는 위대한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일까? 재료와의 내밀한 소통과 지리한 기다림을 견딘 후 라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최 작가 역시도 쉽지는 않았다. “우주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고, 재료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면서 대화도 시도한 결과”였다. “일생을 보내며 만났던 동서남북, 지수화풍 등 시간의 총합으로서의 나무나 흙을 대면하기 위해 재료에 집중하고 또 집중해야 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했어요.”

최 작가가 조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내면의 확장이다. 특히 그는 재료를 조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시·공간의 문제를 다루며 내면의 확장을 도모한다. ‘흙’ 작업의 경우 땅 위 공간을 수평으로 굴려서 덩어리를 얻는가 하면, ‘나무’의 경우는 수직으로 세워서 허공으로 공간을 확장해 간다. 폐쇄성, 부자유스러움이라는 현대인의 공간적인 난제를 드넓은 공간을 굴리고 무한광대한 허공에 세우는 행위를 통해 해소해 간다. 또한 나무나 흙이 걸어온 비가시적인 여정들을 구르거나 나이테를 파내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확장도 이끌어낸다.

이번 전시에는 드로잉 작품도 출품했다. 조각 작업에서 재료와 몸의 교감을 통해 공간과 시간, 나아가 내면의 확장을 시도듯이 드로잉 작업도 동일한 패턴을 따른다. 몸을 매개로 우주의 비밀을 풀어나간다. “흑연으로 2분이면 그을 선을 20분 동안 천천히 그어갑니다. 손이 아닌 심장으로 긋는 선이죠. 제 드로잉은 감정의 기복이 빠진 말하자면 인간 본성의 행위로 드러난 선이죠. 일종의 심전도에 해당된다고 할까요?”

조각하는 행위는 최소화한다. 재료 본연의 모습에서 우주의 메시지를 발견하는데 군더더기는 오히려 방해요소가 된다는 이유에 의한 최소화였다. 그런 이유로 작가의 의도나 개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는 더더욱 사양이다. 하지만 작가의 최소 행위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권력이나 제도, 교육, 매체 등의 인간의 문제를 담론으로 이끌내고 있다. 이만하면 그의 조각에 경의를 표할만 하지 않은가?

최 작가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술가야말로 그 시대의 문이 되어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되고’, ‘오늘날 매체가 문명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등에 대한 시대적인 담론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표현방식은 일반론을 벗어나는 창의성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나무의 결을 따라 깎는 단순한 행위가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그 행위를 통해 위대한 우주를 드러내는 것처럼 예술가의 창의성은 아주 단순하고 사소한 것에서 허를 찌를 수 있어야 해요. 쌀로 밥을 짓는 것보다 떡을 만드는 것이 더 창의적이고, 술로 빚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단계인 가장 최고의 창의에 해당되니까요.” 전시는 12월 20일까지. 053-422-1628

황인옥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