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들이굽지 내굽나 (臂不外曲)
팔이 들이굽지 내굽나 (臂不外曲)
  • 승인 2019.12.05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
전 중리초등교장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마다 천재 소설가 최인호가 샘터지에 연재한 내용들이 가끔씩 생각이 난다. 당시에 샘터는 모든 사람들이 애독하던 잡지였다. 그때 최인호는 네 살의 딸과 두 살의 아들이 있었다. 이야기는 주변 이웃과 최인호 가족의 일기와 같은 내용이었지 싶다.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될 때까지 ‘가족’에 계속 이름이 나왔다. 두 살 터울 남매 다혜와 도단이다. 그 후엔 손자 손녀와의 일화 기록도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었다. 최인호 가족사의 다양한 기록들이다. 지난 11월 8일, 필자는 경주 양남의 나산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손자 아이에게서 학예회초대 전화를 받았다. 손자는 1학년 처음 학급회장이 되었기 때문에 학예회의 첫인사를 하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을 자랑하고픈 마음이었을 게다. 시골 초등학교이지만 한수원의 사택을 학구로 하는 나산초등학교는 전교 학생수가 150명 조금 넘는 숫자이다. 사실 첫손자의 시골학교생활 모습의 이모저모와 자취도 돌아보고 학예회의 모습도 보고 싶었다. 대구에서 새벽에 차를 몰고 2시간여를 걸려서 나산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학예회는 학교장의 인사말도 없앴고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6학년 어린이 사회자가 ‘첫인사 소개’를 안내하였다. 막이 오르자, 두 명의 첫인사하는 1학년 학생이 나왔다. 학급회장인 손자와 여학생 부회장이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두 학생의 인사말이 시작되었다. 손자 훈이가 “~잘하면 박수를 크게 쳐 주시고, 실수를 하면 한 눈을 찡긋거리며 격려해 주시면 더욱 열심히……”라고 동작을 해가며 말하였다. 모습이 늠름하고 의젓했다. ‘언제 저렇게 자라서 말도 더듬지 않고 잘하지. 태도도 당당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정말 잘하는데.’ 하면서 속으로 감탄하였다. 누구에게나 첫손자를 자랑하고픈 마음이 들고 어깨가 우쭐거렸다. 조선 숙종 때 홍만종은 보름 만에 한 권의 책을 지었다. 그래서 그 책의 이름이 ‘순오지(旬五志)’이다. 순오지에 ‘비불외곡(臂不外曲)’이라는 속담이 나온다. ‘팔이 들이굽지 내굽나’하는 뜻이다. ‘들이굽다.’는 것은 ‘안쪽으로 구부러진다.’는 뜻이다.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다. 절대 바깥으로 굽을 수 없다. 바깥으로 굽는다면 비정상적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이 쏠리게 마련이다. 홍만종은 ‘비불외곡(臂不外曲)’에 대하여 ‘잔 잡은 팔 바깥으로 펴지 못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이 더 쏠린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즉 인지상정이다. 아마 필자가 손자를 다른 아이들보다 잘한다고 여기는 것도 인지상정이리라. 내 손자니까 더 귀엽고 얼굴이 더 잘 생겨 보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자기 자식이나 가족이 더 멋지고 훌륭해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어쨌거나 첫손자 훈이가 첫발을 잘 디딘 것만은 기쁜 일이다.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훈이에게 “모두 엄마의 뒷바라지 덕택이니, 엄마에게 ‘고맙습니다.’하여라”고 말하였다. 아무튼 손자가 바르게 잘 자라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요즘 사회의 모습을 보면 혼돈이 아니라 아주 텅 빈 캄캄한 공간과 같다. 며칠 전에도 청와대 별동대원으로 근무하던 A수사관이 지인의 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A수사관은 검찰에서 인정받은 모범일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숨진 A수사관은 파견된 청와대에서도, 소속의 검찰에서도 ‘비불외곡(臂不外曲)’하지 못한 듯하다. 청와대에 근무했는데도 팔이 들이굽지 못하고 내굽은듯 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그것을 말해준다. 더욱 안타깝다. 천자문에 ‘해구상욕(骸垢想浴)’이라는 말이 있다. ‘몸에 때가 끼면 목욕하기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됨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더러운 것을 싫어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A수사관 자살 사건을 국민들은 청와대가 몸에 때가 끼어 있는 듯이 생각하고 있다. 집단 구성원들도 흔히 가족이라 한다. 가족이란 화목하여야 한다. 유순하여야 한다. 서로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팔이 들이굽지 내굽나!’ 그만큼 정상적이어야 한다. 건전해야 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