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의 민낯
문재인 케어의 민낯
  • 승인 2019.12.0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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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현 정권이 야심차게 밀어 붙이고 있는 대표적인 보건의료 정책인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경고등이 들어 왔다. ‘문재인 케어’ 시행 후 건강보험 재정의 부실화가 급속하게 악화되어 위험한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2010년 이후 8년 만인 지난해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 서기 시작한 후 계속 적자의 폭이 심화되고 있어 이 추세라면 20조 원의 건보 누적적립금은 3-4년 내에 완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 1년 만에 건보 재정이 심각하게 위협받으면서 정부가 스스로 ‘문재인 케어’ 축소 불가피론을 언론에 띄우고 있다. 재정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해 온 의료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의 상승과 국민의 의료비 경감 혜택 등을 요란하게 선전하며 완강하게 추진해 온 ‘문재인 케어’라는 포퓰리즘이 드디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 대학병원의 MRI실은 대부분 24시간 가동된다. 폭증하는 MRI 촬영 건수를 감당하지 못하여 새벽까지 촬영을 계속해도 예약이 몇 주 단위는 기본으로 밀려있다. 의사가 MRI촬영을 권해도 비싼 요금에 망설이던 환자들이 굳이 검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경미한 두통에도 MRI를 찍으러 내원하여 당당하게 검사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 졌다. 정부에서 정한 MRI 보험 지급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경증이라서 보험 적용은 안 되고 전처럼 자기 부담으로 검사해야 한다고 하면 정부에서 MRI를 보험 적용해 준다고 발표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항의하는 환자들을 이해시킨다고 진땀 흘리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한마디로 싸니까 안 찍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문재인 케어’에 대해 의료계는 처음부터 강력한 반대를 표명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급진적인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무리수라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케어’의 성적표는 의료계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지 않는 독선적인 정책 강행도 문제지만 그 해결 방식은 더 큰 문제이다.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경증 환자에 대한 MRI 촬영이 늘어나는 경향이 보여서 이 부분에 대한 (급여기준) 관리를 강화하려고 한다.”고 발표하여 진료비 증가의 원인을 의료기관의 심각한 과잉진료 때문으로 돌리고 의료기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급여 기준을 축소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의료계가 보험 재정 악화를 우려 한다고 할 때는 귀를 막았다가 막상 우려했던 일이 터지자, 정책 오류에 대한 사과나 반성 한마디 없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의료계의 과잉 진료가 원인이 아닌지 조사하겠다니 적반하장도 이정도면 수준급이다. 처음부터 의료공급 당사자인 의료계와 협의 없이 인기영합을 위해 이 정책을 입안한 것부터 잘못되었다. 의료계가 재정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하자 국민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반대 의견을 누르고 강행한 것도 열린 민주정부에서 할 일이 아니었다. 결과가 좋지 않지 않게 나오자 그 책임을 의료계에 떠넘기는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 실책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 전가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제대로 된 개선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건강보험의 혜택 확대는 당연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길 일이다. 하지만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을 마련할 묘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간 쌓아 놓은 적립금이 바닥나면 재정 수입을 늘리기 위해 국민건강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거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진료 내용에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아 의료계에 지급할 보험료를 삭감하는 수 밖에 없다. 국민건강 보험료 인상은 국민들의 조세저항을 초래할 것이 뻔한데 정부에서 이 방법을 선택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결국 의료계로 화살을 돌려 과잉진료, 도덕적 해이 등의 멍에를 덮어씌워 지출을 줄이는 방법만이 남는다. 이런 순서가 예상 되었기에 의료계는 처음부터 재정의 뒷받침 없는 급격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반대하고, 긴밀한 협의를 거쳐 꼭 필요한 분야부터 재정의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할 것을 주장했었다.

우리나라의 보건 의료 정책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의료보험제도의 강제지정제로 높은 담을 세우고, 그 내부에서 많은 불합리한 규제로 의료를 규격화 하여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많은 모순을 파생시켰다. 정부는 의료정책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정책의 개선보다 여론 재판식 선전으로 의사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여 의료계의 입을 막는 방식으로 문제점을 덮어 왔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의료일원화, 의약분업 및 의료보험제도의 개선 등 장기적인 보건의료 정책 수립이 당장 시급한데 정부는 표 얻기 좋은 인기 영합적인 정책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케어’로 대형병원 위주의 고비용 의료가 증가하고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해져 중소병원과 지방의 병원은 경영난이 심각하다. 정부가 공들여 추진해 온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수혜자는 도대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한 정책인지 궁금하다. 건강보험의 재정을 망치고, 미래 세대에 그 빚을 떠넘기는 ‘문재인 케어’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번 ‘문재인 케어’의 후퇴를 계기로 의사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여 건전한 의료 풍토를 조성하는 일에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포퓰리즘의 사탕은 달콤하지만 결국 파국을 맞는다. 잊지 말자, 포퓰리즘은 망국의 지름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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