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서 6세기 신라인이 쓴 ‘목간’ 나왔다
경산서 6세기 신라인이 쓴 ‘목간’ 나왔다
  • 최대억
  • 승인 2019.12.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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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운영·조세 제도 기록 추정
얼굴 모양 표현 토기와 함께 발굴
지방 행정·재정 유추 단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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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 글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과거 압독국이 있던 경산에서 6세기에 신라인이 토지 운영과 조세 제도 양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은 경산 지식산업지구 진입 도로 구간 경산 소월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수혈(竪穴·구덩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뻘층에서 삼면에 얼굴 모양을 표현한 토기와 함께 신라시대 토지 관련 목간, 목간보다 훨씬 길고 두꺼운 싸리나무 추정 나무묶음 다발을 찾아냈다고 9일 밝혔다. 경산지역은 6세기 초반에 치성화현·마진량현·노사화현이 설치됐다고 전하며, 소월리에는 소월지를 비롯해 인공적으로 둑을 축조해 마련한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있다. 이번 목간이 나온 경산 소월리 유적은 금호강 지류인 청통천 주변 평야가 보이는 언덕에 있다. 발굴조사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가 확인됐다. 따라서 이번에 발굴된 나무묶음 다발은 신라 수도 경주가 아닌 곳에서 나온 목간으로서 내용에 지방 행정과 재정을 유추할 만한 실마리들이 있어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목간에는 제(堤)가 유독 많이 나오는데, 근현대에 건설한 저수지라 하더라도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어 주변 지역 조사 필요성도 제기된다.

목간은 길이가 74.2㎝이며, 육면에 글씨를 적었다. 사람 얼굴 모양 토기는 제작 시기가 5세기 전반으로 판단됐는데, 목간은 서체나 내용을 근거로 이보다 한 세기 늦은 6세기 유물로 짐작됐다.

김상현 화랑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은 “토기와 목간이 거의 같이 나왔다”며 “현재로서는 토기와 목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지름 1.6m인 원형 수혈 유구 성격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일 1차 판독 작업을 진행해 글자 94자를 읽었다. 여섯 면 중 두 면은 동일한 글자가 반복해서 나타나 글씨를 연습한 흔적으로 추정됐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6세기에 경산 인근 토지 현황을 적은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며 “글자 양이나 글씨 연습 흔적을 보면 현대 업무수첩과 같은 예비문서나 기초문서로, 이후에 정식 문서를 작성했다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그는 목간 형태에 대해 “목간 치고는 상당히 길고, 나무를 일부러 칼로 깎아서 육면을 만든 것 같다”며 “신라 변두리 지역에서 목간을 수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최대억기자 cd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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