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아들 노재헌의 5·18사죄
노태우 아들 노재헌의 5·18사죄
  • 승인 2019.12.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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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5·18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자기의 주장하는 바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부 악의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인사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대부분 정치적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지난번 김순례 이종명 김진태 등 세 사람의 국회의원이 5·18을 고의적으로 폄훼한 사건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의 뜻을 표하지 않고 있어 300여일 항의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5·18학살의 최대 수혜자인 전두환은 지금도 사실관계를 부인하며 발포명령 등 모든 행위를 떠넘기고 있어 관계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은 대통령까지 지낸 인물로서 지나치게 편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최고 책임자답게 “모든 잘못은 나로 인해 생긴 일이니 나를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고 나오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평판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기만 한다.

5·18은 신군부정권의 무지막지한 탄압에 의해서 광주에서만 165명의 희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민중학살 행위였다. 철저한 보도관제로 민중항쟁의 실상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혈안이 되었던 신군부의 책동은 기자정신의 정수를 발휘한 외신의 희생적인 보도로 무산되었다. 이제는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많은 서적들이 발행되어 그 당시의 참담했던 실상이 사실 그대로 알려졌다. ‘택시운전사’는 그 대표적인 영화다. 5·18에 대한 명칭은 폭동 난동 내란 등 신군부의 홍보에 따르다가 ‘광주사태’가 되었으나 시대변화에 따라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부르다가 이제는 광주를 빼고 ‘5·18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공자가 모든 사회현상에는 정명(正名)이 있다고 갈파한 대로 그나마 제 이름을 찾은 듯싶지만 언젠가 ‘5·18혁명’으로 제도적 학술적 명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12년간 독재를 자행하던 자유당정권을 쫓아낸 4·19혁명도 5·16쿠데타에 의해서 의거로 전락된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명으로 ‘4·19혁명’이 법제화되었다. 이처럼 올바른 이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지키려는 국민의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5·18에 대한 능멸을 계속하고 있는 몰지각한 인사들이 스스로의 과오를 깨닫지 못하고 온존하고 있는 세상에 혜성처럼 나타난 인사가 있어 화제가 된다. 전두환과 함께 5·18학살 수괴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있는 노태우다. 그는 전두환의 그림자처럼 동행했던 사람이다. 평생 동지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군부를 휘어잡고 5·18쿠데타를 일으켰으며 6·29선언을 통해서 직선제 대통령까지 지냈다. 대통령 취임 후 전두환을 백담사에 유폐하고 고르바초프 러시아대통령과 제주회담으로 북방외교를 개척한 것은 그가 전두환의 그늘에서 벗어난 획기적인 성과였다. 박철언을 북한에 보내어 남북 화해를 시도한 것도 역대 대통령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의 표시로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5·18학살의 책임이 뒤따라 다닌다. 전두환과 함께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는 질곡의 나날이다. 그는 현재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 노재헌이 나섰다. 아버지의 잘못을 아들이 대신하여 사죄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부모와 상의한 끝에 과감히 결론지었을 것이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광주5·18묘소를 참배하고 무릎 꿇어 사죄했다.

유대인학살의 책임을 통감하고 폴란드 현장을 방문하여 무릎 꿇었던 브란트수상의 사진은 몇 십년이 흘러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회자된다. 한국에서는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바라지만 오불관언(吾不關焉)의 교만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일본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5·18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5·18에 대한 책임자급 사죄는 한 번도 없었다.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면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용서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하물며 대통령까지 역임한 인물이 자식으로 하여금 “모든 허물에 대한 사죄의 뜻”을 진정으로 표시한 데 대하여 5·18단체로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때마침 5·18부상자회 서울지부(지부장 최형호)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하여 운영위원회를 소집하고 토론에 들어갔다. 노태우의 사죄는 진정성을 인정하고 병환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쾌차를 비는 난(蘭) 화분을 보내기로 결의했다. 진정한 사죄는 최대의 피해자의 가슴을 녹인 셈이다. 5·18부상자의 얼음장 같은 가슴을 녹일 수 있는 아들 노재헌의 훈훈한 마음가짐이 유난히 가까이 느껴짐을 보게 된다. 사죄는 용기다. 어느 누구도 용서와 화해의 기쁨이 이보다 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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