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 풍경
결혼식장 풍경
  • 승인 2019.12.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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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노란 은행잎들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거리에는 바람에 날리고 흩어져 바스락거리는 낙엽들로 부산하다.

평소와 달리 거울 앞에서 오래 머물고 있다. 옷장 앞을 서성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머리카락에도 정성을 기울이며, 눈은 연신 시계를 확인하고 있다. 다름 아닌 결혼식의 하객으로 참석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약간의 여유를 두고 결혼식장에 당도했을 때, 먼저 도착한 얼굴들을 보며 마치 나를 기다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주변을 돌아가며 부지런히 악수를 하고, 저간의 안부를 나누기도 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났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혼식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당당하고 의젓한 신랑신부의 입장에서부터 가족친지와 많은 하객들 앞에서 성혼 선언을 하고, 양가 부모님 앞에 공손하게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 따뜻한 포옹으로 맞이하는 부모의 심경에는 반가움과 섭섭함이 함께 배어있을 것이다. 축가 또는 익살을 곁들여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경우도 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예전의 결혼식과 크게 달라진 요즘의 결혼식 장면이다.

주례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경우도 있고, 통념을 벗어난 이색적인 결혼식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거나 앞으로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도 혼인의 뜻을 보이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날의 주인공이 마냥 부럽기도 할 것이다. 하긴 개개인의 성향과 사회적 여건 등에 따라 적령기에 대한 의미가 퇴색한 지도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결혼식장에 가면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풍경을 볼 수 있다. 하나같이 웃는 얼굴들이다. 축하를 위해 모인 자리인 만큼 화를 낼 일이 없다. 화장실이 복잡해 길게 줄을 서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어깨가 부딪혀도 별 일 아니라는 듯 너그럽게 지나칠 수 있다. 결혼식장에 달린 뷔페식당에서 앉을 자리가 없어도, 좋아하는 음식이 바닥을 보여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닌가 싶다. 하객들이 가벼운 수다와 함께 식사를 즐기는 동안 혼례를 무사히 마친 주인공과 혼주가 여기저기 테이블을 돌아가며 답례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 또한 정겹다.

결혼이란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 중차대한 획을 긋는 일이며, 독립적이었던 남녀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성스러운 일이다. 더불어 사랑과 행복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그들의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때로는 주변 환경과 타협하고, 소리 없이 스며들어 화합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필요하다. 책임과 의무와 존중과 양보와 배려와 인내 등 수많은 요소들이 화음을 이루어 아름다운 합창을 만들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치듯 순한 바람에 안기거나 거센 폭풍우를 마주칠 때가 있다. 볕이 따사로운 봄이 지나고, 한겨울 눈보라도 맞이해야 한다. 배배꼬인 실타래처럼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대 청년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앞으로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52.7%로 절반을 조금 넘었다고 한다. 이들 청년에게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결혼제도에 대해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응답이 80.5%로 높게 나타났다고도 한다.

20대 자녀를 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결혼 등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한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1인 가정이 늘어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감성이 메말라가는 것도 편의와 실적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찬바람에 어깨가 옴츠러드는 12월을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달’ 또는 ‘준비를 할 수 있는 달’이라고 한다.

올 한 해를 돌아보고, 미처 하지 못한 표현이나 부족했던 과제가 남아있다면 지금이라도 실천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더 나은 새해를 맞이할 준비와 다짐의 기회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 결혼식장 풍경처럼 서로 덕담을 나누며 밝게 웃는 그런 사회가 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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