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에…몸 하나 누일 쪽방까지 빼앗나”
“이 겨울에…몸 하나 누일 쪽방까지 빼앗나”
  • 박용규
  • 승인 2019.12.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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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한파에 신음하는 사람들
“재건축 때문에 살던 곳 쫓겨나
노숙 생활 이어져 정신 잃기도”
동구 신암 4동 뉴타운 정비사업
여관 거주자 강제이주 위기 처해
“겨울에 노숙할 상황” 고충 토로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 골목에 벽인 것 같지만 문이 달린 쪽방 3채가 있다.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 골목에 벽인 것 같지만 문이 달린 쪽방 3채가 있다.

 


추운 겨울이 오면서 대구의 쪽방촌 주민들에게 고난의 시기가 다가왔다. 이들은 겨울철의 억센 추위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날 두 가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8일 오전 대구 서구 평리동에서 만난 A(67)씨는 1평 남짓한 방 안에서 패딩과 털모자를 쓰고 취재진을 반겼다.

장판이나 천 조각이 깔려있지 않은 한쪽 바닥은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냉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날 오전 11시께 수은주는 영하 1도에 머물렀다.

그는 재건축 사업 때문에 지난해 겨울 살던 곳에서 쫓겨난 후 길거리에서 방황하다 올해 2월에야 어렵사리 단칸방을 구했다. 방을 구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집 부순다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많응께, 그나마 나는 다행이지요.”

그는 겨우내 폐지를 주우며 노숙생활을 이어가다 길거리에서 정신을 잃은 경험을 얘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몸은 성치 않은데 약값은 비쌌다.

A씨는 “밥 먹을 돈을 줄여 달달이 몇십만 원씩 나가는 약을 사먹는 게 무슨 소용이겠나”며 “매달 밀리는 월세가 더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A씨의 점심은 유리병에 든 두유가 전부였다.

대구 동구 신암4동의 한 여관은 어둡고 허름하며 한산했다. 찾아간 시각이 지난 7일 오후 12시 쯤이라 낮 시간의 비교적 포근한 날씨였지만 한 평 남짓한 방들을 포함해 건물 내부에서 쌀쌀한 한기가 있었기 때문에 난방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구여관연탄
대구 동구 신암동 한 여관의 외부 측면에 놓인 연탄들. 이 연탄들은 내년 6월이 되면 여관과 함께 없어진다.

건물 외부 측면에 연탄이 쌓여 있어 이를 이용해 난방을 어느 정도 해결하는 듯했다.

주말 낮이라 다들 나가고 집 안에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어렵게 주민 한 명을 만났다. 밥을 짓기 위해 바깥에 있는 수도를 이용하려 나온 B씨는 밥을 짓고 나서 병환으로 입원 중인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바삐 가려던 참이었다.

B씨는 “아무래도 난방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서 겨울에는 추위에 떠는 것이 사실”이라며 “어차피 내년 초에는 다른 살 곳을 또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신암동여관현수막
대구 동구 신암동 한 여관의 정문 위로 뉴타운 재건축정비사업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여관은 작년 10월부터 진행 중인 신암4동 뉴타운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 때문에 내년 6월에 옆에 있는 빈 여관과 같이 철거될 예정이다.

이 일대의 건물들도 벽에 빨간 페인트로 ‘X’, ‘공가’, ‘철거 예정’이라고 써 있었고 한식당, 사옥, 3층짜리 빌라 등의 건물들이 철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B씨는 속상해하며 “나가라면 나가야지 어쩌겠나, 다른 여관이나 모텔 셋방을 찾거나 겨울에 노숙을 해야 하는데 큰 일이다”고 말했다.

이 일대의 쪽방촌에는 이전 100여 명 정도가 살고 있었으나 모두 이주하고 현재는 A씨 포함 20여 명 정도만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곧 이주를 해야 하는 처지다.

박용규·김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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