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 서면
삶의 끝에 서면
  • 승인 2019.12.16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박사
며칠 전 아주 가까운 지인의 암 발병 소식을 들었다. 정기 건강검진을 하던 중에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 검사를 하였더니 암으로 진단이 났다고 한다. 아직 젊고 평소에 매우 건강했던 그의 갑작스런 발병 소식에 우리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고,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 내 주위의 친인척과 지인들도 암으로 투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나보다 연상이어서 충격을 비교적 잘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지인의 발병 소식이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두 달여 전에 나도 내과에서 혈액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혈액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를 받았다. 2주일 후에 대학병원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난 후, 혈액종양 내과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2주의 기간 동안 마음속에 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아무도 그 생각을 알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결과를 알고 난 후에야 가족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렸기 때문이다.

평생 처음으로 혈액종양 내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동안 많은 환자분들이 진료실에 들어가고 나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연세가 드신 분들이 있는가 하면 젊은 분들도 있었고,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분들과 애써 밝게 웃는 분들도 있었다. 또 큰 소리로 항의하듯 말하는 분들과 작은 목소리로 부탁하듯 말하는 분들도 눈에 띄었다. ‘만일 내가 암 환자라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며 어떤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을까?’ 혈액종양 내과의 대기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별 문제 없을 것 같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나의 그런 생각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비로소 아내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 놀았다.

이번에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했다는 지인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내심 그도 나처럼 ‘별 문제 없다더라. 건강검진 결과가 잘못이었더라’라며 다소 방정맞게 웃으며 그의 입원 무용담을 들려주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나는 그의 무용담을 들으며 그의 방정맞음을 마음껏 비웃어 주고,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오진을 단단히 질타하리라 내심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방정맞은 무용담은 결국 들을 수 없었고,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오진도 질타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그를 생각하고 기도하며 불면의 밤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의 아픔과 안쓰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사람의 일상과 한 가정의 행복에 갑작스럽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당혹스러웠다. 그런 그의 상황은 그를 사랑하는 나에게 쉽고도 깊게 전이되어 내 삶 가운데도 불현듯 죽음이 뛰어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 ‘아마도 우리는 구십까지, 운이 나쁘면 백 살까지 살게 될지 몰라. 그 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며 고민하고 있던 내 삶 가운데 죽음이 갑자기 뛰어 든 것이다.

그의 발병 이후 내 마음은 그와 함께 삶의 끝에 서 있다. 내 옆에 담담하게 서 있는 그의 손을 잡고서 키르케고르의 시(詩) 하나를 읽어 준다. ‘삶의 끝에 서면’이라는 시(詩)이다.

‘삶의 끝에 서면/당신은 자신이 한 어떤 일도/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중요한 건 그 일을 하는 동안/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이다./당신은 행복했는가?/다정했는가?/자상했는가?/남들을 보살피고 동정하고 이해했는가?/너그럽고 잘 베풀었는가?/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했는가?’

그 시로 그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당신 때문에 삶의 끝에 서 보니 정말 내가 한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군요. 중요한 것은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이네요. 내가 좀 더 다정하지 못해서 내가 좀 더 자상하지 못하여 미안합니다. 좀 더 잘 보살피고 동정하고 이해하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이제라도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잘 베풀고, 무엇보다 좀 더 사랑하며 살 아 보겠습니다. 그러니 그대여, 제발 좀 더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 주시오. 아프더라도 좋으니 나보다 먼저 가지 말고, 제발 우리와 함께 있어 주시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