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판도라의 상자 열린다… 봉산문화회관 연극 ‘유산게임’
미술시장 판도라의 상자 열린다… 봉산문화회관 연극 ‘유산게임’
  • 황인옥
  • 승인 2019.12.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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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확히 해석해야 재산 전달”
부친 작품에 매달린 세 자녀
접근 어려운 분야 소재 채택
“미술이 주는 철학 느껴보길”
연극-유산게임-공연모습
연극 ‘유산게임’ 공연 모습. 가운데 작품이 이건용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차용한 그림이다.

구지영-지오뮤직대표
구지영 지오 뮤직 대표
손호석
대본 및 연출 손호석
현대미술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만 접해야 한다는 편견을 깼다는 측면에서 연극 ‘유산게임’은 또 하나의 유산을 만들었다 평가할 만하다. ‘유산게임’은 현대미술 작품이나 그림 속에 담긴 개념, 미술시장의 메커니즘을 공연 예술 형식으로 녹여냈다. 모르긴 해도 현대미술을 소재로 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들은 기억이 없을 만큼 소재가 주는 독창성은 탁월하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 강한 의문부터 들었다. 미술이 미술전문가나 미술애호가의 전문영역인 까닭에 대중성이 현저하게 낮고, 전문지식을 요하는 분야인데 “과연 공연 장르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았다.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공연이 진행되는 모든 순간이 쫀득쫀득함으로 채워졌다. 미술은 물론이고 인생을 관통하는 행복과 불행의 대서사가 짧은 공연 속에 씨실과 날실처럼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직조됐다.

일단 무대 조명이 켜지면 이 공연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하는지 금방 눈치 채게 된다. 무대 중앙에 보무도 당당하게 펼쳐져 있는 원(圓) 그림에서 미술을 연상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외미술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건용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차용한 원(圓)이다. 이건용은 신체에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를 드로잉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예컨대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캔버스를 등지고 뒤돌아서 드로잉을 하는 식인데, 작가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려왔던 전통회화에 의문을 던진다.

이건용 작가의 신체 드로잉을 연극의 소재로 채택한 배경에는 이번 작품의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손호석 씨의 평소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가 “8년 전에 이건용 작가님의 신체드로잉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보고 감동을 받고 작품도 소장하게 됐다”며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자주 방문해 미술작품을 관람하기도 하고, 가끔은 작품을 구입하기도 한다”며 미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가 미술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미술가들의 작가정신”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가는 미술작가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그런 삶의 태도는 대중성을 토대로 하는 공연분야와 달라요. 존경스럽죠.”

극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 미술 작가 백화수가 세상을 떠나는 설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백화수가 3천 억원 상당의 작품을 남겼고, 그의 유언을 듣기 위해 세 자녀와 변호사 그리고 백화수와 함께 했던 큐레이터가 한 자리에 모인다. 변호사는 세 자녀에게 백화수 작품에 대한 해석을 가장 적확하게 하는 자녀에게 그림을 유산으로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유산을 얻기 위해 세 명의 자녀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아버지의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인터미션 없이 70분간 이어지는 공연의 호흡은 가파르다. 아버지의 그림을 유산으로 받으려는 자녀들의 욕망과 술수가 가감없이 드러날 때면 인간의 본성을 보는 것같은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술 작품의 개념을 8찾아가는 과정이나 미술시장의 매커니즘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시점에서도 호기심에 물이 한껏 오른다. 평소에 알기 어려웠던 분야인 미술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과 더불어 관객들의 미술에 대한 호기심도 비례해 올라간다. 이는 연출가가 이번 작품에서 노리는 의도다.

“평소에 미술을 접했지만 작품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여서 미술사 공부를 많이 했죠. 그러면서 미술에 대한 이해도 더 높아졌어요. 제가 작품을 쓰면서 그러했듯 관객들도 미술이 주는 철학적이고 창의적인 유산을 느끼고 가셨으면 합니다.”

이건용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소재로 한 만큼 작가가 공연장에 나타날 것인가는 관심거리다. 손 연출가가 이에 대해 “요즘 잘 나가시는 작가님이라 일정 빼기가 쉽지 않지만 공연을 직접 보실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했다.

작품을 제작한 단체는 지오뮤직. 봉산문화회관 상주단체다. 소극장 작품임에도 18회 장기공연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공연장 상주단체라는 배경이 작용했다. 지오뮤직 대표이자 이번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은 구지영이 “미술이라는 특수한 분야를 다루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고 언급했다. “주요배우들의 미술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시립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기도 하고 미술시장이나 개념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도 했어요. 미술감독도 현재 활동 중인 윤동희 작가에게 맡겼죠.”

대중성보다 전문성이 강한 현대미술을 소재로 한 연극을 관람객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구 대표가 “어떤 날은 인터파크에서 예매순위 18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며 “티켓예매율이 꽤 높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공연은 29일까지 이어지지만 분주한 연말이라 놓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단 예매 먼저. 053-661-352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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