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살인마의 초상권
<대구논단> 살인마의 초상권
  • 승인 2009.02.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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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무릇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다. 법률에 의해서 제한받지 않는 한 인권을 침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과거 같으면 범죄자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공개되거나 사생활 문제가 불거져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것은 일반 국민이나 수사기관이 모두 똑같았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경찰의 조사를 받는 피의자의 신원공개가 가려지기 시작했다.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하거나 이니셜로 대신하기도 했다. 특히 얼굴 모습이 선명하게 찍힌 범죄자의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엄격하게 기피하는 현상이 나왔다. 조직 폭력배들이 집단적인 광기를 부리며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어도 그들의 우람한 알몸 모습은 희미하게 영상 처리되어 전혀 알아보지 못하도록 조치되었다.

연예인들의 스캔들이 터져도 익숙하게 알려진 얼굴이지만 낯선 이방인처럼 흐리게 하여 실상 접근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을 뽐냈다. 경찰서 조사실에서 피의자로 잡혀온 사람들에 대해서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타월을 덮어주거나 모자나 마스크를 씌워주는 배려는 경찰의 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가는 일이다. 범죄는 밉지만 사람을 미워해선 안 된다는 법언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으로 보여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영수들이 피의자로 구속되거나 체포되었을 때는 낱낱이 공개된다. 소환과정에서도 포토라인까지 친절하게 그어준다. 사진기자들의 촬영이 편하도록 온갖 배려를 다한다. 그들의 피의사실은 사돈의 팔촌 문제까지도 시시콜콜히 공개된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인데다 국민 누구나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태여 감춰줄 이유가 없어서일 게다.

이렇게 함으로서 사회적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층의 부정비리가 감소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흉악한 살인범이나 조직 폭력배 등 사회적 암 덩어리 역할을 하는 범죄자에 대해서도 지도층 범죄자와 똑같은 기준에 의해서 일벌백계의 엄정한 법의 집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에 말썽을 빚고 있는 살인마 강호순의 얼굴 모습은 철저하게 가려졌다. 모자와 옷 그리고 마스크까지 착용하는 중무장으로 얼굴을 보호했다. 수사기관에서는 몽타주를 배포하여 범인을 공개수배하기도 하고 도망자의 사진을 공개하여 많은 시민들의 제보에 의해서 체포하는 개가를 올리는 수도 많다. 그들의 범죄가 살인범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법 집행의 엄정함 앞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법을 무시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며 악질적인 행위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범죄자를 잡아들여야 하는 경찰력은 범죄 예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범인을 공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예방효과를 가져온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또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어도 발각되지 않으면 범죄구성이 안 된다. 그렇더라도 범죄가 없어진 것은 아니며 언제나 밝혀지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비적 범죄자들에게 붙잡힌 범인의 신상이 공개되고 얼굴 사진이 선명하게 알려져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지는 것은 범죄예방에 효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서는 극악무도한 살인범의 얼굴이라도 공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피의자의 얼굴공개를 기피하고 있다. 아예 경찰 내부규정으로 이를 명시하여 자의적인 해석을 못하게 했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피의자의 초상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난히 큰 범죄가 많이 발생되는 미국에서는 철저하게 범죄자의 실상을 사실 그대로 공개한다. 범죄에 대한 일반 국민의 경계심을 고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초상권을 보호하는 것은 한국이 선진국이다. 이번에도 그러한 현상이 벌어졌지만 매스컴은 그냥 놔두지 않고 강호순의 사진을 공개했다.

비록 살인마의 얼굴이지만 “잘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 뒤 강호순이 수사관한테 했던 말이 흘러나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내가 범행한 사건의 기록을 책으로 내서 아들에게 인세라도 받게 하겠다.” 이 정도 되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짐승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사람 죽인 것이 무슨 영웅행위라도 되는 양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검찰소환에 나오면서 왜 떳떳하게 얼굴을 들지 못할까.

강호순 처럼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얼굴은 만천하에 공개되어 파렴치한 인간의 전형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이들에게는 초상권이 해당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예비범죄자들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조직폭력배들에 대해서도 결코 흐린 화면으로 감춰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경찰 자체의 내규는 고쳐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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