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막이
방패막이
  • 승인 2019.12.2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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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예전 어느 대학에서 직장을 다니는 만학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가 도덕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종교 지도자들의 부도덕한 점에 대해서 비판을 한 적이 있었다. 주된 내용은 종교 지도자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이야기였다. 종교 지도자들이 신을 섬기고, 교인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자리에 자신들이 앉아서 신(神)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대한 비판이었다.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을 즈음, 한 학생 분이 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분은 목사님 이셨다. 그 목사님은 아주 작은 교회를 섬기고 계시고 검소하시며, 인간적인 분이셨다. 내가 비판하던 그런 목사님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목사님이셨다.

그분이 내 말을 가로막고 화를 내셨다.“그만 하십시오. 안 그런 목사도 많습니다.” 맞는 말이다. 안 그런 목사들도 많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부도덕한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분이 화를 내며 말을 가로막았고 더 이상 부도덕한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눌 수가 없었다. 부도덕한 종교지도자들의 문제는 사라지고 그런 부도덕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사람과 부도덕한 종교지도자들의 방패막이를 자처한 나름 도덕적인 종교지도자가 서로 얼굴이 굳어지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종교지도자가 아닌 다른 학우들도 모두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 자리에는 부도덕한 종교지도자는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부도덕한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우리끼리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사회복지 시설의 비리가 있어서 그것을 밝힌 적이 있었다. 불법 보조금 횡령, 장애인 학대, 가족들 유령 직원 등재, 온갖 불법과 인권유린을 하는 곳이라 뉴스와 신문, 추적 60분에 4번이나 방송을 탔다. 이것만 봐도 시설이 얼마나 문제 있었는지 알 것이다. 사회복지 기득권, 부패한 운영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늘 앞에 방패막이로 나선 사람들은 힘없고 성실히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시끄럽게 하지 말자”는 “그만하자”며 문제가 있는 운영자가 아닌 문제를 제기한 우리 직원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노사의 갈등보다 힘든 것이 노노 갈등이라는 것을. 그것을 잘 아는 운영자들은 고의적으로 노노 갈등을 조장했고 직원들이 그들의 앞에 방패막이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었다.

한 대형 교회가 목회자의 횡령 문제로 시끄럽다. 엄청난 돈을 횡령했고, 성(性)문제도 불거졌다. 급기야 교회는 둘로 나뉘었고 사랑이 가득해야 할 곳에 미움이 가득하게 되었다. 목회자의 비리 문제는 어디로 사라지고 목사의 문제를 비판하는 교인들과 목사의 방패막이를 자처한 교인들이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참 씁쓸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정작 싸움의 대상은 그 자리에 없다. 방패막이를 자처한 사람이 늘 그 앞자리에 서서 그들을 옹호해주고 막아준다. 자기가 그런 사람 아니면 함께 그 사람을 욕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늘 방패막이가 되어 싸움의 본질을 흐린다. “너희들은 잘한 게 있나”고 말하며 그들을 옹호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저지른 사람보다 그러지 않은 사람끼리 싸움을 하게 된다.

그들은 한 번도 앞에 나선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과 사람은 애시당초 성사가 되지 않았다. 늘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제일 선봉장으로 앞서서 그 싸움에 방패막이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래서 싸움은 늘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이었다. 늘 앞에서 싸우는 사람은 힘없고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민초들이었다. 우리는 방패막이가 아니다. 우리는 용병이 아니다. 대신 싸울 필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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