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점화되는 불판 위에 뒤척이는 아버지의 포구를 얹는다.
밤새도록 포구가 뒤척인 건, 만선 깃발 올리지 못하고 돌아온 한 척 고깃배 때문만은 아니다. 부채 통장, 출금
의 눈금들이 먹물로 가득해도 줄줄이 꿰어져 올라오지 않던 오징어, 온몸 오그라들던 그해 겨울이 거기 있었다.
빈 낚싯바늘만 뱃전 긁어대던 바다, 아버지 기다리며 모래성 쌓던 나의 귀는 허기진 갈매기 소리로 그득했다.
웅크린 몸과 입술, 쫙 펴질 때까지 수평선에 걸리면 나는 서서히 말라가는 빨판, 열아홉 살 꿈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짭조름한 가난은 구멍 난 주머니 같았다. 한 끼의 허기가 모래로 빠져나갈 때 몇몇은 질퍽거리는 바닥에 눌러앉
아 입술 오물거리며 외딴 불협화음을 달랬고, 나는 전기요 들고 서울 비탈진 마을 이곳저곳 누비다가 오그라들
데로 더 오그라들고 있었다.
얼굴 하얗게 분칠한 오징어 아침 햇살이 잠깐 입술 내어준 자리에 붉은 속살은 아려왔다. 노을 스칠 때마다 미
역, 다시마, 파래, 김, 퉁퉁마디 바다 향기를 순서대로 외우는 것이 내 삶을 위로하는 주문 법
먹물 든 내 안에도 뼈 없는 파도가 살아있었나!
통째로 구워 먹고 싶던 바다를 떠올리며 얹는 불판에서
오징어는 집어등 불 밝혀 만선의 깃발
뒤집고 있다.
◇문근영= 1963년 대구출생, 효성여자대학교 졸업, 열린시학 신인작품상(15), 눈높이 아동문학상에 동시 ‘눈꺼풀’ 외 15편당선(16),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나무’ 당선(17),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18), 신춘문예 당선자 시인 선 당선, 금샘 문학상 당선.
<해설> 세상 만물 중에 순순히 제 살점을 내주는 걸 본적 있는가! 바다라고해서 순순히 제 살점을 바치는 일은 없다. 인생살이 다를 바 있겠는가? 좁은 바닥을 헤치고 큰 바다를 향하려 꿈꾸는 것도 세상바다가 가진 유익한 먹물을 얼마나 내 지식 창고에 쌓느냐는 일일 것이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