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부활
  • 승인 2019.12.30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도서관에서 빌린 시집

맨발, 82쪽과 83쪽 사이에

나뭇잎 하나 누워 있다

맨발로 기어간 애벌레에게

흔쾌히 내어준 몸

숭숭 구멍 깊은 그 자리 서늘하다

내게 쓸쓸함을 알게 해준 그대는

지금쯤 나풀거리는 몸짓으로

어느 하늘을 날고 있을까

떠나간 모든 꿈들의 자리는

대개 꾸덕꾸덕 마른 타액의 흔적이 있다

마지막 덮던 책장 바르르 떠는 것도 그렇다

허공을 훑고 지나가는 부활의 징후에서

발견된 것이 나뭇잎만이 아니듯

나비의 견골로 펴질 벌레의 알 뭉치가

빼곡히 들어찬 밑줄을 삼켰다

껍질에 갇힌 당신이라면

저 납작한 포복 끝내고

당찬 나비로 벌떡 일어나리라는 듯

◇이복희= 문학시대 신인상,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에세이문예 회원, 구상예술제 금상, 시공간 회원, 낙동강세계평화문학상, 선주문학상 수상, 구미사우회 회원

<해설> 시인의 시가 세상에 나왔다가 누군가의 서재에서 잠이 들고 긴 영면의 잠을 깨고 부활을 할 때만큼 눈부신 때는 없다. 스스로의 부활이 아닌 또 다른 시인의 눈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얻었으니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희열마저 느낀다. 안 된다며 웅크린 자에게 껍질에 갇히지 말고 훨훨 날아가라는 당부가 인상 깊다.

-정광일(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