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하라 (鼻大目小)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하라 (鼻大目小)
  • 승인 2020.01.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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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장
전 대구중리초등 교장


기다리던 마음이었기에/저리도 환희의 소리를 듣고/다가와야 할 순간이었기에/내 마음은 영점에 서 있다.//넓게 보아야 할 문턱이기에/이제 나는 해맑은 웃음을 짓다.(임자 신정원단, 필자) 1972년 영해 대진항에서 바라보던 일출은 경이로웠다. 해맑음 그대로였다. 그 후로 근하신년의 엽서를 보낼 때마다 일출의 그림을 그려보냈었다.

2020년이 벌써 이틀이 지났다. 올해는 경자(庚子)년 쥐띠해이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교사로 처음 발령을 받고 맞이한 첫해가 임자년(壬子年)이다. 48년 전 쥐띠의 해 첫날에 쓴 시가 일기장의 첫머리에 붓으로 씌어있었다. 그 때만해도 시골의 오일장이 서면 길바닥 좌판에는 ‘장화홍련전, 콩쥐팥쥐, 심청전, 장한몽, 옥당춘전, ….’등 국문소설들을 팔았다. 당시 쥐띠의 해여서 ‘서동지전(鼠同知傳)’을 시장에서 샀었다.

서동지전 소설의 등장인물은 서대주(鼠大州), 다람쥐, 백호이다.

중국 당나라 옹주땅 구궁산 토굴에는 서대주가 살고 있었다. 서대주는 당태종 이세민을 돕기 위하여 쥐 무리를 이끌고 적의 창고 곡식을 전부 없애버렸다. 보답으로 서대주는 당태종에게서 벼슬을 받고 쥐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그 때 하도산에 살던 성품이 간악한 다람쥐도 찾아왔다. 다람쥐는 천성이 게으르고 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서대주에게 날밤과 잣 알갱이를 얻어 갔다.

겨울이 되자 다람쥐는 굶는 신세가 되어 다시 서대주에게 찾아가 구걸을 하였다. 서대주는 쥐의 식구들이 많아서 곡식을 나눠주지 못했다. 간악한 다람쥐는 판관인 백호를 찾아가 거짓으로 꾸민 고발장을 냈다. 판관 백호는 서대주를 잡아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실 서대주는 죄가 없고 다람쥐의 무고임을 알게 되었다. 판관 백호는 다람쥐를 잡아와 감옥에 가두었다. 서대주는 판관 백호에게 다람쥐를 용서해 풀어줄 것을 간청하여 함께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서대주는 사과하는 다람쥐에게 황금을 주어 돌려보내었다.

조선시대 국문소설의 전형적인 특징인 권선징악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쥐를 우화한 인간세상의 모습도 이와 같음을 일깨웠다. 그런데 ‘서동지전’을 읽으면 무언가를 채워도 될 만한 공간이 있었다. 보통 다람쥐는 재롱을 떠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쥐는 왠지 불편하고 징그럽다는 선입견으로 싫어한다. 쥐는 착하고, 다람쥐는 간악하다는 것은 반전이다. 다람쥐의 배은망덕을 보은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건 생각의 융통성이다.

중국 주나라의 조각가 환혁(桓赫)은 나무를 깎고 새길 때에 ‘비대(鼻大), 목소(目小)하라.’고 했다.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하라.’는 뜻이다. 조각을 할 때의 도(道)이다.

‘코는 크면 작게 할 수 있으나, 작으면 크게 할 수 없다. 눈은 작으면 크게 할 수 있지만, 크면 작게 할 수는 없다. 일을 하는 것도 이것과 같으니, 만든 뒤에 반드시 고친다면, 모든 일에 실패가 줄어든다.’고 하였다. 환혁은 이것을 ‘제사과패(諸事寡敗)’라고 하였다. ‘모든 일에 실패를 줄이려면’의 의미이다.

조각에서 ‘고니를 새기다가 안 되면 오리가 된다.’는 각곡유목(刻鵠類鶩)이나 그림에서 ‘범을 그리다 안 되면 개와 비슷한 정도는 되겠지.’는 화호유구(畵虎類狗)이다. 두 말은 ‘안 되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느껴진다. 적극성이 없다. 불명확하다.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없다. 제사과패(諸事寡敗)와는 의미가 다르다.

2020년을 맞아 계획을 세운 사람은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하라’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천하다가 안 되면 뭔가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여유를 갖고 수정 보완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모든 일에 실패를 줄이는 길이다.

공자는 삼계도(三計圖)에서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세워야 하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세워야 하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워야 한다. 어릴 때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두어들일 곡식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아직 계획이 어설프거나 미완인 사람은 설이 있다. 진짜 쥐의 해는 ‘설날’이다. 조각할 때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하라.’ 모든 일에 실패를 줄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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