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있는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
감동이 있는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
  • 승인 2020.01.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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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스스로 영화를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지인이 있어 자주 영화감상을 하게 된다. 새해 첫 주말에도, 역시 영화를 보러가자는 제안에 가벼운 걸음으로 시내로 나갔다. 포근한 날씨에, 미세먼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두 교황(The Two Popes)’이라는 영화였다. 내용은 ‘자진 사임으로 바티칸을 뒤흔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소개가 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멋지고 안락한 의전차량 대신 소형차를 타고 다녔다는데 친근감을 갖고 있던 터라, 호기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도 했다.

온실에서만 생활한 듯 다소 독선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의 베네딕토 16세(안소니 홉킨스 분)와 소탈하고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조나단 프라이스 분) 교황. 이들은 성격과 생활방식은 물론 교리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전자가 보수적이라면, 후자는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두 교황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자 로마의 주교인 교황(베네딕토 16세)은 사임을 위해 뒤를 이을 상대로 265대 교황 선출 당시 자신과 경합을 벌였던 베르고골리오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을 선택한다. 그리고 교황 선출 이후 고국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가 은퇴를 허락받기위해 교황을 찾아간 베르고골리오 추기경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공통점을 발견하고,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며, 사임의사를 밝히고 받아들이기까지의 장면 하나하나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는 차분하게 전개되는 가운데서도 많은 느낌을 전해주었다. 세트라고는 하지만 바티칸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놀라웠다. 그리고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여서 교황을 선출하는 장면, 연기의 색깔로 교황의 선출여부를 외부에서 알 수 있도록 설계된 건축물, 개표 후 투표용지를 현장에서 불태우는 모습 등 영화라는 형식을 빌었으나 결코 영화 같지 않은 사실감과 진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고는 하나 과장되거나 부족한 표현도 있었을 것이다. 지루할 수도 있음을 감안해 곳곳에 배치한 양념 같은 장면들이 제작진의 노력을 돋보이게 했다. 교황도 피자와 콜라를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축구경기를 보면서 자신의 고국을 응원하는 모습이 깨소금 맛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교황들이 소통을 위해 한참동안 영어로 대화를 하느라 힘이 들었다는 푸념 또한 얼마나 인간적인가.

처음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 내심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서 편견 없이 감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편안한 자세로 감동을 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충분했다. 종교적 색깔보다는 감각적인 연출과 매력적인 연기와 훈훈한 스토리가 응집된 영화였음에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에 있었다. ‘멈추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모두의 잘못이다’라는 등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가슴속 메아리로 남아있었다. 그래,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어린 시절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보따리 하나 풀어놓은 것처럼 신선하고 따뜻했다.

우리의 정치인들도 이런 영화를 단체로 관람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는 풍토는 국민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뿐이다. 상대를 탓하고 원망하며,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과 ‘나는 괜찮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는 내로남불 의식이야말로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뭔가 달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

눈부시게 거창한 계획보다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더 값질 수 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한 생각 바꾸어보는 것도 커다란 전환점이 되리라. 지도자와 종교인, 정치인과 공직자, 직장인, 주부, 학생 등 저마다의 위치에 알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우리도 머지않아 정신이 성숙한 선진국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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