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有用)의 유용(無用)
무용(有用)의 유용(無用)
  • 승인 2020.01.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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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다. 돌이켜보면 쓸모없다 생각했던 것들도 어느 날 맞춘 듯이 쓰임 받을 때가 분명히 있었다. 오늘은 무용의 유용에 대해 생각해보려한다.

숲에 크고 화려한 뿔을 가진 사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사슴은 머리에 난 멋진 뿔이 늘 자랑거리였다. 크기며, 모양이며, 모든 사슴이 부러워할 만한 뿔이었다. 반면에 그 사슴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가늘고 볼품없는 다리였다. 몸에 비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자신의 멋진 뿔에 비해서 다리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는 사슴이 자신의 멋진 뿔을 뽐내며 숲길을 걷고 있었다. 사슴이 지나갈 때마다 다른 사슴들은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슴도 은근히 그걸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한껏 뽐을 내며 숲길을 걷고 있을 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탕’하고 들렸다. 순간 사슴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포수가 사슴을 사냥하러 숲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멋진 뿔을 가진 사슴도 다른 사슴들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슴들에 비해 유난히 큰 뿔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달릴 때마다 나무의 잔가지가 뿔에 걸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큰 나뭇가지에 완전히 뿔이 걸려 꼼짝할 수가 없게 되었다. 포수가 자신을 향해서 달려왔지만 사슴의 뿔은 나뭇가지에서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점점 더 포수의 멀리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사슴은 나뭇가지와 뿔이 엉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사슴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엉킨 뿔과 나뭇가지는 풀어질 생각이 없었다. 포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심한 듯, 총을 어깨에 걸치고 사슴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뚝’하고 나무 가지가 부러졌고, 엉켜있던 뿔과 나뭇가지가 풀어졌다. 사슴은 자신의 두 다리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고 포수의 위협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 포수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지만 사슴의 두 다리는 포수의 걸음보다 몇 배 빠른 걸음으로 위험한 곳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슴을 살린 것은 사슴의 멋진 뿔이 아니었다. 도리어 더 위험에 빠지게 하였다. 반면에 사슴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것은 늘 부끄러워했던 가는 다리였다. 무용(無用)이 유용(有用)되는 순간이다.

본인은 요즘 나무와 사랑에 빠져있다. 특히 파렛트(지게차 따위로 물건을 실어 나를 때 물건을 안정적으로 옮기기 위해 사용하는 구조물)와의 사랑에 빠졌다. 모두 쓸모가 없어서 구석에 방치된 나무들이다. 그 나무들을 본인은 허락을 받고 집으로 가져와서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한다. 선반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 의자를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 머릿속에 무궁무진하게 아이디어가 숨 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나무인지 모르나 본인의 눈에는 모두 작품으로 보인다. 특히 구석에 쳐 박혀 비 맞고, 바람맞아 볼품없는 나무일수록 엔틱(antique)한 느낌이 강해서 작품으로는 더 가치가 있다. 생각을 달리하면 처치 곤란이었던 무용(無用)의 나무들도 얼마든지 엔틱 가구의 자원이 되는 유용(有用)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장기(長技)와 취미도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의 수많은 경험 등도 무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많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알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불필요 한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아픔도 자원이 되고, 실수와 넘어짐도 자원이 될 날이 반드시 온다. 쓸모없다 생각하면 쓸모없고, 쓸모 있다고 생각하면 무한 쓰임을 받는 것들이 주위에는 많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고 별 도움 안돼 보이는 사람도 어느 날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그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산을 지키는 것은 잘 생긴 나무가 아니라 굽고 못 생긴 나무라 했다. 당장 쓸모없다고 계속 무용(無用)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때에 맞게 유용(有用)하게 쓰여 질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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