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스승”…다년간 국제콩쿨 경험 큰 밑거름
“무대가 스승”…다년간 국제콩쿨 경험 큰 밑거름
  • 황인옥
  • 승인 2020.01.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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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성악계 기대주 바리톤 이호준
김해시립합창단 정식 제의 거절
솔로 음악가로 성장 위해 유학길
7년간 유럽 20여곳 콩쿠르 참여
작년 국제콩쿠르 2곳서 1위 차지
오페라 ‘라 보엠’으로 국내 데뷔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 목표
내공·실력 다지며 기회 노려
다시-바리톤이호준
 

단기간에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다지기에 콩쿠르 대회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짧은 시간에 연주력이 수직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권위의 콩쿠르에서 1등의 영광이라도주어지면 앞날은 탄탄대로다. 그러니 젊은 연주자들이 기를 쓰고 참가하려 할밖에. 설사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명망있는 심사위원 앞에서 연주를 펼친 것만으로도 젊은 연주자에게는 충분히 남는 장사(?)다.

바리톤 이호준은 이탈리아 유학 중에 콩쿠르 대회에 남다른 열정을 불살랐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유럽의 주요 콩쿠르 대회에 참여하며 콩쿠르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어림잡아 1년에 세 차례 이상 콩쿠르 대회에 참가했다. 7년간 20여곳의 콩쿠르 대회에 참가했고, 그때마다 1, 2위를 놓친 적이 없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발세시아(Valsesia) 국제콩쿨과 파스팔레 파파노(Pasquale Pappano) 국제콩쿨에서 각각 1위를 거머쥐는 쾌거 를 거뒀다.

파스팔레 파파노 국제콩쿨은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음악코치인 안토니오 파파노가 그의 아버지인 파스팔레 파파노(Pasquale Pappano)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콩쿨이다. 1위 수상자에게는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마스터 클래스와 5월에 미국 플로리에서 열리는 순회연주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다. 최근 대구를 찾은 이호준이 “파스탈레 파파노 콩쿠르는 신생 콩쿠르지만 성악가라면 모두가 만나고 싶어하는 안토니오 파파노의 마스트 클래스를 받을 기회를 얻어 영광”이라며 심정을 전했다.

콩쿠르 대회 참가는 학생 신분으로 무대 경험을 쌓는 지름길이다. 여기에 일찍부터 절제하는 생활습관을 기르는 부가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콩쿨에 나가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마음가짐부터 달라져요. 연주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한 준비도 하게 되죠. 술을 멀리하고 절제하는 등 생활습관부터 바꾸게 되죠.”

그가 “연주자에게 무대가 스승”이라며 주요 콩쿠르에 참가해온 배경을 밝혔다. 무대 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연주자들과의 네트워크도 만들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콩쿠르 대회 참가가 결정되면 먼저 철저하게 자신과 싸워야 한다. 단기간에 치열한 연습이 뒤따라야 하고, 절제된 생활습관도 지켜야 한다. 이와 함께 콩쿠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과도 부딪히며 콩쿠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 걸음 성장하게 된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성악가들 앞에서 노래하며 ‘나도 그들의 길을 따라 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은 콩쿠르를 통해 얻는 큰 성과인 것 같아요.”

이호준은 영남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과 이탈리아 베르첼리 발롯티음악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발세시아나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마에에스트로 Gianni Maffeo,Fulvio Bottega 사사했다. 현재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 무대 데뷔는 인천아트센터에서 기획한 콘서트형식의 오페라 ‘라 보엠’을 통해서다. 그는 마르첼로 역으로 열연하며 국내 공연계에 존재감을 알렸다. “국내 데뷔 무대에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국내 성악가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어요.”

이호준은 노력파 이전에 타고난 성악가였다. 어린시절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소리를 시나브로 들으며 성장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바리톤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것. “초등학교 5~6학년때부터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아버지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목소리 톤이 굵었었죠.” 일찍부터 재능이 드러났고, 응원부대도 생겼다. 그들이 이호준이 성악가로 성장하는데 시기마다 역할을 해주었다.

노래로 첫 활동은 MBC어린이합창이었다.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무대가 주는 희열을 경험했다. 이후 경북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지금까지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성악가가 되기 위해 달려왔다. “중학교 3학년 때 음악 선생님께서 노래를 불러보라 하셨는데 ‘목소리가 참 좋다’시며 ‘성악을 해보라’ 권하신 것이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성악가로 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생(生)의 전환기마다 “성악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봉착하곤 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며 귀도 트이고 시야도 넓어졌지만 막상 군 제대 후에 회의감에 휩싸였다. 현실적인 문제로 주춤거리던 시기였다. “다른 친구들처럼 취직을 해 볼까”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시 막막했어요. 일용직 아르바이트도 하고 전자상가 행사 일도 뛰었죠. 그때 친구와 함께 음악회를 가게 됐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올라왔죠.”

제대 후에 김해시립합창단 단기 단원으로 들어갔다. 일주일에 3회 정도 출근해서 연습하는 느슨한 일정이었지만 단원들과 함께 노래하고 즐기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의 성실성과 재능을 눈여겨 본 합창단측에서 정식 단원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는 또 한 번의 진로 변화를 모색했다. 솔로 가수가 되고 싶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이탈리아 음악대학에 진학하자 본격적으로 콩쿠르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에서 콩쿠르 무대에 많이 서지 못한 아쉬움이 그를 콩쿠르 대회로 이끌었다. “당시 콩쿠르 대회에 나가 상을 타야겠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이호준은 대구에서 음악대학을 졸업한 대구 출신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서고 싶은 열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했다. 실력을 다지며 기회를 기다리겠다는 것. 이 즈음에서 그에게 좋은 성악가의 조건을 물었더니 주저없이 “연기력”을 꼽았다. “대사를 정확하게 해석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표현을 할 수 없게 되요. 연출가가 원하는 것도 호흡과 연기라고 봐요. 저 역시 그런 자질을 갖추기 위해 유명성악가들의 공연을 보면서 그들의 목소리 톤이나 표정을 관찰하죠.”

오페라는 시각과 청각 등 오감으로 즐기는 종합예술이지만 노래는 일차적으로 청각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역시 성악가로써 이 점에 주목하고 끊임없이 레슨을 받고 있다. ‘어떤 소리를 내는지’에 대한 점검을 상시적으로 한다. “같은 곡이라도 성악가마다 다른 소리를 내죠.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맛있는 소리를 내야하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죠. 저는 저만의 색깔과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성악가로 살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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