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번거로운 형벌은 나라에 폐단을 끼쳤다(韓弊煩刑)
한비자의 번거로운 형벌은 나라에 폐단을 끼쳤다(韓弊煩刑)
  • 승인 2020.01.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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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지난 1월 9일, 국회는 제374회 본회의에서 민생법안 198건을 의결 통과시켰다. ‘개인정보 보호법’을 포함하여 198개이다. 엊그제 ‘유치원 3법’도 통과시켰다. 국민들은 이 많은 번거로운 법률의 제목과 내용을 확실히 알까?

2020년 1월1일 대경예임회의 시산제를 대구 수성구 시지동 ‘천을산’에서 가졌다. 대경예임회의 창립은 1999년도이다. 그 동안 시산제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열렸다. 몇 년 전에는 시산제를 지내다가 식순에 오류가 있었다. 회원 간에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여 시끄러운 적도 있었다. 필자는 시산제도 동해 ‘해파랑 길’에서 함께 건배하며 간소하게 치룰 예정이었다. 여러 번 개정된 복잡한 회칙을 상기하며 선배들에게 양해도 구했다. 그런데 하필 신정에 첫째 주 수요일이 될 줄이야. 예전의 식순에 의거 번거롭게 진행했다.

필자는 교사로 있으면서 고학년을 오래 하였다. 오랜만에 저학년을 맡았는데 도저히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불감당이었다. 할 수없이 교실에서의 규칙을 많이 만들었다. ‘이야기는 도란도란, 발걸음은 사뿐사뿐, 친구와는 사이좋게, 교실에선 장난금지, 욕설하지 않기,…’등을 칠판 구석에 써 놓았다. 그런데 저학년 아이들은 옆 짝 친구가 어기기만 하면 무조건 담임에게 일러바치는 것이었다. 처음엔 잘못한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야단도 치고 고함을 질러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고학년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성숙해서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어느 날 칠판과 게시판에 적어 놓은 규칙들을 전부 없애버렸다. 귀찮지만 아이들에게 낙서금지, 장난금지 같은 ‘~금지’를 없앴다. 대신 칭찬하기, 자랑하기 등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이라 분위기는 금방 좋아졌다. ‘참 잘 생각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자문에 ‘한폐번형(韓弊煩刑)’이란 말이 있다. ‘한비자의 번거로운 형벌은 나라에 폐단을 끼쳤다.’는 뜻이다. ‘번거롭다.’는 것은 복잡하다는 의미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한(韓)나라의 한비(韓非)가 쓴 책이다. 한비는 말을 더듬고 말솜씨도 없었다. 그러나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탁월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비는 유학을 내세우는 자들은 경전을 들먹이며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나라의 법령을 어긴다고 생각하였다. 유학자들을 아주 옳잖게 보았다. 성악설을 믿는 한비는 나라를 엄격한 법률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군주들이 몰라주는데 울분을 터드리며 ‘한비자(韓非子)’를 썼다.

한비가 주장한 것은 법(法)·술(術)·세(勢)의 세 가지이다. 법(法)은 백성의 사사로운 이익 추구를 막고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하였다. 군주에게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행위의 준칙으로 본 것이다. 술(術)이란 방법이다. 법을 집행함에 있어 그 사람의 공과를 보아서 상을 주거나 능력에 따라 벼슬을 주어야 한다. 반드시 군주만이 상벌을 행해야 한다. 용인술(用人術)이 그렇다. 세(勢)는 기세를 말한다. 이것은 오직 군주만이 가지는 유일한 권세를 일컫는다. 당연히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세 가지 요소는 군주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들이다. 신하나 백성은 무조건 따라야 하고 힘은 군주만이 행사할 수 있었다.

진시황(秦始皇)은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한비를 만났다. 진시황은 그의 사상을 받아들여 군주의 막강한 힘으로 부국강병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천하를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백성을 착취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한비는 동문수학한 이사(李斯)가 모함하여 진시황에게 버림을 받고 사약을 받았다. 진나라도 결국 15년 만에 망했다. 번거로운 형벌이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다.

‘한폐번형(韓弊煩刑)’의 대구는 ‘하준약법(何遵約法)’이다. ‘소하(蕭何)가 간단한 법을 지켰다.’는 뜻이다. 진나라를 멸망시켜 한(漢) 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은 번거로운 법을 축소하기로 약속하였다. 개국공신이며 재상인 소하에게 아홉 조목의 법을 만들게 했다. 한(漢)의 기반을 다지는 법률이 되었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이 있었다. 한비자의 ‘법·술·세’에 따른 답변은 아니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번거로움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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