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파바로티 2
[문화칼럼] 파바로티 2
  • 승인 2020.01.22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선구자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미래의 사람을 위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고독한 천재의 심정이 절절이 와 닿는다. 이에 비하면 당대에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파바로티는 무척이나 행복한 예술가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감각으로 자신의 상품성을 앞서서 만들어 나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수염과 왼손에 쥔 손수건. 성악가는 노래할 때 손 처리가 곤혹스럽다. 매니저의 조언이라고 하나 그는 이런 자신만의 이미지를 잘 만드는 감각이 뛰어 났다. 발상의 전환 또는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 그 대표적 상품이 3테너 콘서트였다. ‘찻잔 속에서 넓은 세상으로…’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3테너

이제는 보통명사화 된 ‘3테너.’ 그 시작은 1990년 로마 월드컵이었다. 지금은 웬만하면(?) 하는 3테너 콘서트. 그 당시는 각자 확고한 명성을 얻은 그들이기에 많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파바로티야 지존이니까 부담이 적었을 수 있었겠지만 도밍고, 카레라스는 어쩌면 월드스타로서의 위상에 상처가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용감한 그들은 멋지게 해치웠다. 우열이 아닌 각자의 매력, 개성을 잘 만들어 냈다. 그리고 노래하는 것이 아닌 놀 줄 아는, 클래스가 다른 차원을 보여준 무대였다. 득보다 실이 많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남다른 스타성으로 위기(?)를 잘 극복했다. 또한 3테너 콘서트를 말할 때 크로스 오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크로스 오버

이것의 역사는 꽤 길지만 우리의 피부에 와 닿은 것은 존 덴버와 도밍고의 ‘퍼햅스 러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곡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금단의 영역처럼 인식되고 있던 것을 최정상의 두 사람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파바로티는 그가 주역을 맡은 영화 ‘Yes Giorgio’에서 크로스오버 노래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크로스오버는 ‘파바로티와 친구들’을 통해서다. 자선의 목적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많은 인기를 끌었다. 반반으로 배치된 자리에 클래식 팬들은 정장에 좌석에 앉아서, 나머지는 스탠딩으로 공연을 즐긴다. 뛰고 춤추며… 관객들은 한마디로 ‘짬짜’를 즐기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당대 최고의 대중음악인을 대상으로 보컬 트레이닝도 하면서 이 공연에 정성을 쏟았다. 크로스오버란 이처럼 자신의 잔이 가득 할 때 아름답다.

#에피소드

1992년 12월 7일(밀라노 수호성인 성 암브로시오 축일-매년 이날이 스칼라 좌 개막일이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이미 여러 날 전부터 이 오페라에 관한 이야기로 온 도시가 들썩일 정도였다.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타이틀 롤을 맡은 파바로티의 음성으로 오페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오페라 무대에서 그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무티 지휘, 제피렐리 연출의 베르디 오페라. 그야말로 빅카드였다.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온 팬들도 티켓을 구하기 위해 겨울 추위에도 며칠씩 노숙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 사랑과 질투, 우정과 죽음의 공간에서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노래하던 파바로티. 4막 장면, 연인이었다가 지금은 어머니가 된 엘리자벳타와 지상에서의 이별을 듀엣으로 노래하던 중 소위 말하는 음 이탈 사건이 생겼다. 대가답지 않은 이 해프닝에 이탈리아 관객은 즉각 반응하였다. ‘우’ 하는 야유와 Vai Via(점잖게 표현하면-나가라!)라고 소리치며 야단법석이었다. 이정도 실수에 이렇게 격한 반응을 그들의 자랑 파바로티에게 쏟아 붙이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 뒷날 이웃한 이탈리아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복합적 이유 때문이었다 한다. 3테너 콘서트를 비롯한 대형 야외무대 공연에 치우쳐 왔던 점. 마이크에 의존하는 점. 그리고 세금 문제로 국적을 모나코로 옮긴 것에 대한 반감. 아무리 사랑받는 스타라고 하더라도 대중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한 순간에 질타를 받게 됨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파바로티는 이렇게 말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테너는 파바로티 당신인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20세기 진정한 테너는 카루소입니다.” 겸손의 뜻이 아니다. 그는 대단히 정확하다. 파바로티에 대하여 혹평하는 성악가들도 많다. 보컬 면에서 그보다 훨씬 위대한 성악가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성에서 그를 능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소리를 내는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그러했다. 절대로 넘치지 않는 것! 절대로 어렵다! 이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개인의 행복이 시작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