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정성은 그침이 없어야 한다 (至誠無息)
지극한 정성은 그침이 없어야 한다 (至誠無息)
  • 승인 2020.01.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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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설 다음날 부부는 함께 요양병원에 장모님을 뵈러갔다. 이런 저런 세상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장모님이 딸에게 “너는 환갑 지났나?”하였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흐려지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런데 얼토당토않게 딸의 나이를 확 깎아버리는 것이었다. 딸은 “엄마! 내 나이가 벌써 육십을 넘은지 언제인데….”하였다.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장모님이었지만 조금씩 심해지는 것 같았다. 부부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초췌해진 장모님을 내려다보았다. 창밖에서는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날씨만큼 마음도 우울하고 허허로웠다.

다음날도 변덕스런 날씨에 바람이 불었다. 흐린 날의 수채화처럼 된 마음을 추스르려 부부는 함안의 입곡군립공원에 갔다. 그곳에선 호수에서 부는 바람에 산책로에 매달린 시화작품들이 펄럭였다. 시골의 한글학교에서 문자를 익힌 작품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읽을수록 가슴 뭉클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조양순의 ‘내 머리 속에’라는 시에 ‘콩밭에 가니 새 한 마리가/할매 니만 묵지 말고 같이 좀 묵자/하고 콕콕 파 묵는 새를 쫏차 삐고/집에 와 공부 한 거 생각하니/다 이자 삣네/머리속을 파묵는 새가 있나 보네/빨리 쫏차 삐모 안이자 삘라나/그래도 하다보모 한 개라도 알겠지.’라는 내용이었다. 진심이 담긴 표현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콩밭에서 새 한 마리와 마주쳐서 마음속으로 다툼의 대화를 하다가 한글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조양순 시인은 머릿속에도 기억을 잊어버리게 콕콕 파먹는 새가 있다고 생각한 내용이 기발하였다. 그래도 빨리 새를 쫓아버리면 안 잊어버리러나 생각을 한다. 어쨌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한 개라도 알게 된다는 신념이 가득 찬 글이다. 공자는 ‘간사함이 없는 글’을 시(詩)라고 했다. 조양순은 최고의 시인이다. 위대한 시인이 따로 있나? 티 없이 순진하면 최고의 시인이지.

어제 뵈었던 ‘장모님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머릿속을 파먹는 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새를 빨리 쫓아버리면 안 잊어버리는 방법이 분명 있을 텐데. ‘그래도 하다보모 한 개라도 알겠지.’라는 구절에 마음이 쏠린다. ‘하다보모’는 경상도에선 지성(至誠)을 말한다. 지극한 정성의 노력을 일컫는 말이다.

중용에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한 정성은 그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용의 요지는 바로 성(誠)이다. 자사(子思)는 ‘성(誠)’을, ‘인간 스스로 자기를 이루게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 밖의 만물에 대하여도 이루어 줌으로써 구현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이룸을 ‘어짊(仁)’이라 하였다. 나 이외의 만물들에게서 이룸을 ‘앎(知)’이라 하였다. 자사는 ‘어짊’과 ‘앎’을 인간성품을 만들어주는 덕성으로 보았다. 인간이 이 두 가지를 마음에 받아들여 융합하는 과정이 ‘도(道)’이다. 융합은 비빔밥, 볶음밥, 잡채, 떡볶이가 아니다. 새로운 방법의 덕성이며, 완전히 다른 마땅함을 얻어야 한다.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도(道)이기 때문이다. 정성은 거짓 없는 진실함 바로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지극한 정성은 그침이 없어야 한다.’ 그치지 않으면 오래가고, 오래가면 징조를 경험하고, 징조를 경험하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넓고 두터워지고, 두터워지면 높고 밝아진다. 넓고 두터움은 만물을 싣는 땅덩어리이고, 높고 밝음은 만물을 덮는 하늘이다. 또한 오래가고 멀어지는 것은 영원함이다.

정성은 스스로 이루어가는 것이고, 도(道)는 스스로가 도를 만드는 것이다. 정성은 만물의 끝과 시작이다. 정성을 쏟지 않으면 만물도 없다. 그래서 현자는 정성을 다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 남이 한 번 잘하면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을 잘하면 나는 천 번을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사상가 김용옥도 어릴 때는 형제들에게서 항상 “돌대가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보다도 천 배의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호도 ‘돌대가리’를 뜻하는 ‘도올=돌’로 하였다고 한다.(중용 인간의 맛)

지극한 정성은 사람을 움직인다. 지극한 정성은 그침이 없어야 감화를 미치게 한다. 그래야 머릿속을 파먹는 새를 쫓을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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