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화수분’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화수분’
  • 승인 2020.02.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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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지금 세계는 봉준호의 ‘기생충’영화 열광에 빠져 있다. 엊그제께 10일 ‘기생충’이 미국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작품상을 받았다. 최다 수상기록을 세웠다. 마지막 작품상은 손에 땀을 쥘 만큼 긴장됐다. 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가 “패러사이트(parasite)!”라고 했을 때 저절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꿈같은 일들이 실제로 영화처럼 벌어졌다. 봉준호는 삼필봉(三筆峰)이 있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필자가 ‘기생충’ 영화를 본 것은 지난 5일(수요일) 대경예임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을 탐방했을 때였다. 필암(筆巖)아래에서는 하서 김인후가 태어났다. ‘삼필봉, 문필봉, 필봉, 필암’ 등은 모두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라 한다. 김인후는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여라.’라는 ‘자연가’ 시조로 유명하다.

필암서원 출입문의 ‘확연루(廓然樓)’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다. ‘경장각(敬藏閣)’의 현판글씨는 정조대왕의 글씨이다. 현판은 보호차원에서 그물망이 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그림이 보관되어 있었다. 필암서원 유물전시관을 방문하였다. 김인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대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생충’을 봤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기대하면서였다. 도로 노면이 좋지 않아 화면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모두 숨죽여 가며 열심히 시청했다. 영화 ‘기생충’은 노력은 하지 않고 남에게 빌붙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유해 낮춰 한 말인 듯했다.

반지하에 사는 김기택 가족 네 명은 모두 백수다. 가난하기 때문에 근처 집이나 카페에서 나오는 와이파이를 공짜로 사용하고, 소독차가 다니는 날이면 집안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공짜로 소독한다. 맏이인 김기우가 부자인 박 사장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사건은 전개된다. 가족관계를 전혀 밝히지 않고 여동생 기정이는 미술지도 강사로, 어머니는 가정부로, 아버지 김기택은 운전기사로 교묘하게 차례차례로 박 사장 집에 취직을 하게 된다. 일어나는 사건들이 일희일비하고 반전을 거듭한다. 마지막 화면은 시작할 때와 똑같이 맏이 김기우와 어머니가 여전히 반지하에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꿈꾼 듯이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이제 그만!”하고 끝을 맺는다. 눈 내리는 어두운 겨울날이다.

지금으로부터 85년 전에 늘봄 전영택은 ‘화수분’을 썼다. 배경은 1920년대의 눈 내린 춥고 어두운 겨울날이다. 시점(視點)이 다른 겨울날 이야기이다.

‘화수분은 양평서 오정이 거의 되어서 떠나서, 해져갈 즈음해서 백리를 거의 와서 어떤 높은 고개에 올라섰다. 칼날 같은 바람이 뺨을 친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앞을 내려다보다가, 소나무 밑에 희끄무레한 사람의 모양을 보았다. 그곳을 곧 달려가 보았다. 가본즉 그것은 옥분과 그의 어머니다. 나무 밑 눈 위에 나뭇가지를 깔고, 어린 것 업는 헌 누더기를 쓰고 한끝으로 어린 것을 꼭 안아 가지고 웅크리고 떨고 있다. 화수분은 왁 달려들어 안았다. 어멈은 눈은 떴으나 말은 못한다. 화수분도 말을 못한다. 어린 것을 가운데 두고 그냥 껴안고 밤을 지낸 모양이다. 이튿날 나무장수가 그 앞을 지나다보니 두 남녀가 껴안은 채 죽어있고, 그 사이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어린애가 시체를 툭툭치는 걸 보게 되어 아이만 소에 싣고 돌아왔다.’

화수분과 그의 아내는 추위에 그의 둘째딸 세 살배기 옥분이를 보듬어 안고 죽는다. 그 사이에서 옥분은 살아남아 따뜻한 햇볕을 받는다.

‘화수분’의 의미는 ‘재물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보물단지’를 말한다. 그 단지 안에는 어떤 물건이든지 담아두기만 하면 끊임없이 새끼를 쳐서 계속 나오는 요술단지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금도끼 은도끼, 말하는 남생이, 이상한 돌절구, 원님과 항아리…’등의 전래동화가 모두 화수분의 이야기들이다. 여기엔 항상 보물단지를 깨뜨려 일확천금을 노리는 못된 사람들도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화수분’이었다. 영화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보물단지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황금알을 대한민국에 선물했다. 이제 누구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 그 황금알을 꺼내려는 못된 마음을 가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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