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없는 강의를 해보니
학생 없는 강의를 해보니
  • 승인 2020.03.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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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남미 에콰도르에서 태평양 쪽으로 1천500km 떨어진 머나먼 곳에 갈라파고스라는 섬이 있다. 19개의 자그마한 섬으로 구성된 갈라파고스제도는 원래 무인도였지만 지금은 유원지와 휴양지로서 사람을 불러들인다. 그 먼 곳까지 코로나가 침입했다는 뉴스는 자못 심각하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용어로 멀리 떨어져 앉기 같은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때마침 날씨는 화창하고 산과 들에 꽃이 만발하기 시작하면서 엉덩이가 들썩거리는지 서울근교 음식점들은 대만원이다. 1시간을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을 정도니 팬데믹의 위협도 아랑곳하지 않을 태세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외국인 입국을 제한하지 않았음에도 코로나19가 소강상태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은 발원지 중국을 넘어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계속 증가 중이다. 더 이상 놔둬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4월1일부터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들을 2주간 강제로 자가 격리시키고 비용도 스스로 부담시킨다고 발표되었다. 각 급 학교의 휴교가 4월6일까지로 되어있는데 의학계에서는 연장해야 된다고 건의한다.

이미 개학이 된 대학에서는 학교 문을 열지 않고 온라인강의로 대체하고 있어 언제나 정상화될지 짐작조차 안 된다. 때마침 4월19일이 곧 닥치는데 1960년에 일어났던 4·19혁명 60주년기념일이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독재정권을 쫓아내고 민주혁명을 완수했다. 저는 그 당시 전북대 정치과 3학년으로 전국최초의 대학생 데모인 4·4시위를 기획하고 실천한 바 있다. 지방대학의 열세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전북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발자취가 남아있어 4·19혁명의 공로를 인정받고 전북대 출신 9명이 건국포장을 수상한 국가유공자로 국가보훈처에 등록되었다.

해마다 이 날이 돌아오면 전북의 매스컴과 전북대신문이 4·4시위의 의의를 기사와 논설로 기려준다. 이번에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신기현교수의 제의로 저는 정치학 전공학생을 상대로 4·19혁명 특강을 맡았다. 4·19특강은 전북대뿐만 아니라 고려대를 비롯한 각 대학과 전국의 고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원하는 학교에는 기꺼이 찾아가 강연을 해왔다. 전주고, 진주고, 제물포고, 대광고, 인창고, 전주여고, 서울고 등 전국 어디를 막론하고 찾아가 대강당에서 4.19를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 전북대에서도 예외 없이 온라인강의를 요청했다. 평소에 하던 대로 강의를 하면 되겠지 하고 수락했는데 그게 아니다. 많은 청중이 있어야 강연자의 능력과 기량이 발휘되는 것인데 아무도 없는 빈 강의실에서 카메라렌즈만 보고 강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청중과 눈을 맞춰야 끌어들일 수 있는데 허공에 매달린 느낌이다. 요즘 축구나 야구를 관중 없이 자기 팀을 둘로 나눠 청백전으로 연습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로 힘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수나 성악가들도 청중 없는 공연을 할 터인데 무척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학생 없는 강의보다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눈을 마주칠 필요가 없고 노래는 자기 혼자 불러도 박수는 없을지라도 크게 지장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이 보이지 않는 강의는 문자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앞에 앉은 학생을 보고 뒤에 있는 학생도 바라보며 좌우를 돌아보며 강의를 해야 생동감이 살아나는 법인데 무미건조한 정적 속에서 혼자서 떠들어야 하는 온라인용 강의는 한마디로 못할 짓이었다.

언젠가 어느 중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방송실에서 영상강의를 통하여 전교생이 각자의 교실에서 청취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는 강연자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방송실에 학생 10여 명을 앉혀줬다. 청중이 많건 적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의 배려였다. 요즘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원천지처럼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종교집단은 신천지교회지만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교회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제발 종교집회를 하지 말아달라고 통사정이다. 불교와 가톨릭은 진즉부터 법회와 미사를 중단했다. 문제는 개신교다. 교파가 서로 다른 교회의 특성 때문에 불교나 가톨릭처럼 일사불란한 집회중단 절차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양식 있는 많은 교회에서는 온라인 예배를 시행하고 있다. 온라인예배도 온라인강의처럼 교인들의 호응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하려니 힘들 것은 매한가지다.

선거가 닥쳐오는데 후보자들도 청중을 모은 연설회는 아예 꿈도 못 꾸게 생겼다. 유권자를 상대로 악수하고 말을 나눠도 표가 올지 말진데 스킨십이 사라진 이번 선거는 후보자에게는 눈감 땡감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덕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청중도, 학생도, 교인도, 관중도 없는 행사를 치르는 관계자들의 애로야 필설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한 시라도 빨리 코로나를 물리치고 모두 웃으며 손을 잡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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