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선거?
공정한 선거?
  • 승인 2020.04.0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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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부국장
고무신과 막걸리로 표가 거래되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 초만 해도 선거판에서 공공연히 현금이 뿌려졌다. 유권자에게 얼마를 뿌려야 당선되고 얼마를 뿌려 낙선했다는 말들이 선거 후에 공공연히 나돌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현금 살포는 물론 유권자들에게 조그마한 향응도 제공하지 못하도록 선거법이 강화됐고, 이 때문에 아무도 돈 선거를 하지 못한다. 매표 행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강력한 법이 만들어져 깨끗한 선거를 치르고자 한 것이다.

후보자와 유권자가 돈을 개인끼리 주고받으면 법 위반인데, 이번 총선은 법 안에서 돈을 주고받으며 치르게 될 모양새다.

미국 대통령이 자국민 한 명당 1천200달러를 주기로 한 마당이니 명분은 그런대로 갖췄다. 국민 1인당 100만원이든 80만원이든 빨리 줘야 한다. 선거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선거 전에 주지는 못할지라도 주자고 해야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다. 절박감이 몰려온다. 정책이나 비전이 문제가 아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뿌리는 일에 앞장서야만 표가 온다. 그래서 여당 대표가 중위소득 어쩌고저쩌고 라며 선을 긋지 말고 모든 국민들이 전부 다 돈을 받도록 하자고 말을 바꾼다. 심지어 이를 두고 매표행위라거나 포퓰리즘 이라고 했던 야당 대표들도 전원 입장을 바꿨다. 모든 국민이 다 돈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제 총선 판은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합동유세로 왁자했던 지난날의 미숙했던 선거판보다 더 왁자해졌다. 백주대낮에, 합법이라는 틀 안에서, 그것도 정부가 현금을 살포할 수 있게 됐으니 정책이 무슨 소용인가. 오로지 어느 당이, 누가, 얼마나 ‘국민들이 더 챙겨 받을 수 있도록 노력 했느냐’로 당락이 갈릴 판국이다. 마침 정부는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고 지급 금액도 미지수다. 선거를 눈앞에 둔 마당이니 일단 지르고 봐야 한다. 원래 말부터 해놓고 보는데 이골이 난 정부는 이 돈을 보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금이 들어가며 앞으로의 국민들에게 또 얼마나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할지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지난해 국가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천750조원에 육박했다든지, 나라살림 적자폭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별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국가채무로 국민 1인당 빚이 1천500만원이 되든 말든 나라의 통합재정수지가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적자로 돌아섰든 말든 큰 문제가 안 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총선이 일주일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다. “이런 답답한 경우를 봤나, 총선이 코 앞인데”라는 여당의 목소리 앞에선 재정건전성이니 국가부채 같은 것은 문제 삼아서는 안되는 금기 사항이다.

선거를 앞 둔 더불어민주당은 5조원이 넘는 자영업자의 부실채권을 소각하고 기초연금을 인상하자는 공약을 내밀고 있다. 미래통합당도 1인당 긴급재난지원금 50만원 지급과 일부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종부세 부담 완화가 주공약이다. 민생당 역시 재난극복수당 1인당 50만원을, 정의당은 월세 거주 청년에게 월 20만원 지급, 기본소득당은 전 국민 월 60만원 기본 소득 지급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전국 시내버스와 광역버스, 지하철, 대학 학자금 까지 모두 무료라는 공약도 곁들여져 있다. 여당도 야당도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을 쏟아냈지만 재원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돈으로 표를 구걸하는 것이다. 아니 매표를 하려는 것이다. 재원에 대한 고려 없는 현금 지급. 취업난과 실직으로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미래 세대에게 끔찍한 세금 폭탄을 떠넘기려는 중이다. 사생결단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정당들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목이 빠져라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국민들의 목마름을 실로 교묘하게 파고들며 나라살림을 도외시 한 지르기에 매진 중이다.

이번 총선이 공정한 선거가 될는지 선거를 눈 앞에 둔 이 시점에서 실로 의문이다. 유능한 후보자가 자유롭게 출마할 수 있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운동 과정을 거쳐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투표와 개표가 공정하게 관리되어 유권자의 의사가 정확하게 투표결과에 반영되는 그런 공정한 선거가 가능한가. 새로운 선거법으로 온갖 비례정당들이 난무해 군소정당이 이득을 보게 될지, 거대 당이 이득을 볼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운동장에서 각 당의 전략에 따라 지역구 마다 이합집산을 하는 많은 후보자 가운데 유능한 후보자는 과연 누구인가. 당의 존재를 등에 업은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신공항과 공항이전, 취수원 문제, 탈원전, 소주성 등등 정책공방이 사라져 버린 이 선거판에서 돈 몰이로 표를 구하는 정당들. 유권자들은 과연 후보자를 정확히 파악할 기회를 보장 받았는가. 눈 앞에 돈이 왔다갔다 하는데 유권자들의 의사가 정확하게 투표결과에 반영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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