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다(生則道)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다(生則道)
  • 승인 2020.04.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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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경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모든 학교가 개학을 못하고 있다. 어쨌든 코로나19로 답답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초비상 상태이다. 한국전쟁 때도 피난지에서 천막학교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개학연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감염이 줄어들고 있지만 갑갑하다.

대경예임회는 22년 동안 연중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산행이나 문화탐방 하던 날 태풍이나 기상악화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나쁘던 날씨도 현지에 도착하면 바람이 잠잠하거나 햇빛이 비춰서 계획된 일들은 항상 마무리가 차질 없이 진행되곤 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때문에 대경예임회의 모든 행사가 중단되었다.

필자는 코로나19로 고향 누나의 빈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백거이의 시에 ‘문 밖을 안 나간 지 또 수십일/무엇으로 소일하며 누구와 지내나?/책 펼쳐 읽으니 꼭 옛 사람을 뵙는 듯/물욕을 내지 않으면 정신도 맑아지는 법’이라는 내용이었다. 뭘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3월 중순 우리 부부는 머잖은 영주 순흥에 있는 소수서원에 갔다. 일 년 전에 대경예임회에서 문화탐방을 한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에 퇴계의 노력으로 470년 전, 명종 임금이 ‘소수서원(紹修書院)’의 현판을 내렸다. ‘소수(紹修)’는 ‘기폐지학(旣廢之學) 소이수지(紹而修之)’에서 나온 말이다.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의미이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서원 앞 경렴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죽계수 건너편에는 ‘경자(敬字)’바위가 있다. 주세붕이 ‘공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옳음으로써 밖으로 드러내는 행동을 반듯하게 한다.’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주세붕이 쓴 그 ‘경(敬)’의 글씨 위에 퇴계가 ‘백운동(白雲洞)’이라고 글씨를 썼다. 경은 바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수양의 핵심이다. 경은 서원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의 지침이기도 하다.

맹자는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항상 그 사람을 공경한다.’고 했다. 퇴계도 경제잠도에서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피도록 하라. 이러한 것을 그치지 않고 일삼아 하는 것을 지경(持敬)’이라 하였다.

소수서원 박물관은 코로나19 때문에 굳게 잠겨 있었다. 길이 막혀 버렸다. 순간적으로 답답함이 또 스멀스멀 엄습하였다. 철학자 이당 안병욱은 ‘생즉도(生則道)’라 하였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유약은 ‘훌륭한 사람이 근본에 힘쓰는 것은, 근본이 수립되어야 도(道)가 생기기 때문이다.’고 했다. 공자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당 안병욱은 생명의 소중함을 ‘맹귀부목(盲龜浮木)’으로 설명했다. 깊은 바다 속에 눈이 먼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이 맹귀(盲龜)는 백년마다 깊은 바다에서 수면에 떠올랐다. 바다 수면에는 구멍이 뚫린 널빤지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리저리 망망대해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정처 없이 떠다닌다. 백년에 한 번 떠오른 맹귀는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널빤지를 잡고 그곳에서 구멍을 찾아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란 정말 어려움을 비유한 설화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 억만 겁 떠오르면 만날 것이다. 어쩌면 가능한 불가능이다. 아니 불가능한 가능일 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길이 있다. 논밭 길, 서울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인도, 차도, 기찻길, 손길, 발길, 눈길, 마음 길 등이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참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운 길이다. 모두가 중요하다. 평화의 길, 행복의 길, 자유의 길, 영광의 길, 고행의 길, 부모의 길, 스승의 길, 사랑의 길, 신사도, 선비도 등이 그렇다.

모든 학교가 개학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紹修)는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스승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부담스러우리라. 어떻든 누가 뭐래도 매우 중요한 길은, 자기의 길을 쉼 없이 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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