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째 멈춰 있는 대한민국 신종감염병 대응 시계
5년 째 멈춰 있는 대한민국 신종감염병 대응 시계
  • 승인 2020.05.0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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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2016년 7월, 보건복지부(이하 보복부)는 [2015년 메르스 백서 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라는 백서를 발간했다. 이것은 중동에서 메르스가 발생한 지 3년 만인 2015년 5월 20일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하고, 같은 해 12월 23일 국내유행 종료를 선언하기까지 217일간 환자 186명, 격리자 16,693명 그리고 사망자 38명(사망율 20.4%)이란 결과를 남긴 대한민국정부의 가슴 아픈 기록이다. 기존 백서와는 달리 정부시각에서 대응기록 위주가 아닌 현장전문가 등 관계자 46명과 대응인력 245명의 면담 및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비교적 객관적 시각에서 사태 평가와 시사점을 사태 초기부터 시기별로 기록해 놓았다. 메르스 사태는 34개[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포함]의 백서가 추가로 발간될 만큼 우리나라 신종감염병 대응 공공의료체계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백서엔 정부가 메르스에 대한 정보부족(감염력 낮게 평가 등)과 전문 인력 부족, 정보공개 지연 등 초동대처를 제대로 못했으며, 대부분 병원 내 감염과 관련되어 생겼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잘못된 의료 환경(상급병원 쏠림 현상, 응급실 과밀화 등)과 간병·병문안 문화가 감염병 확산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적혀 있다.

백서는 ① 서론 ② 메르스 특성과 국제동향 ③ 메르스 대응과정(대응 조직과 운영체계, 검역, 역학조사, 진단검사, 위기소통, 접촉자 관리, 집중관리병원, 격리병상 및 자원관리, 환자와 지역사회 치료, 지원과 보상, 국제협력, 대응예산) ④ 메르스 대응평가(중앙 대응조직과 협력 체계, 환자 발견과 역학조사, 진단검사 및 격리병상, 위기소통과 환자 발생 의료기관 정보 공개, 집중관리병원 방역조치, 지역사회 대응, 환자와 지역사회 진료, 사후 지원과 보상, 평가와 후속조치) ⑤ 메르스로부터 얻은 교훈과 제언 등 총 5장으로 나누었고, 끝에 신종감염병 대응 행동요령(국민, 의료기관장 및 의료인, 보복부·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 지자체, 언론 등 기타) 등이 적혀 있다.

그리고 당시의 여러 상황에 대한 현장전문가들과 대응인력들의 목소리를 담았으며, 문제점 및 긍정적인 점과 함께 앞으로 해결할 과제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그 예가 신종감염병에 대한 보다 효과적이고 철저한 대응을 위해 국가정책조정회의(2015년 9월)에서 논의된 4가지 방향의 [국가방역체계개편방안]이다[1. 신종감염병 국내 유입 차단과 조기 유행종료 가능한 즉각 대응 체계 구축 2. 신종감염병 유행 확산에 대비한 진단·격리·전문적 치료체계 구축 3. 병원감염 방지를 위한 의료 환경 개선 4. 신종감염병 거버넌스(공동 목표를 위해 주어진 자원제약 하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장치) 개편]. 여기에 포함된 48개 추진과제는 ① 질본 역량 강화(인력 충원과 정규직 확대, 조직개선, 교육훈련 프로그램 등) ② 신종감염병 거버넌스 개편 및 대응·협력 체계 구축(방역 컨트롤타워 재설계, 중앙-지방 역할 명료화 및 중앙지휘 통제권 확립, 질본 위상 제고 및 전문성 강화, 감염병전문치료병원 지정 제도 도입, 감염병 의심환자 별도 응급의료체계 도입, 중앙의료관련감염관리지원단 설치, 의료기관 간 의뢰·회송진료협력 활성화 등) ③ 공중보건당국 방역 업무 개선(신종감염병 정보수집·분석, 검역, 초기 대응, 진단과 실험·치료 자원 확보 등) ④ 신종감염병 R & D 투자(역학조사, 감시와 공중보건 분야/진단·검사 분야/임상 분야/기초 분야) ⑤ 의료기관 감염관리 역량강화 및 개선(병원 내 진료체계와 이용문화 평가 및 개선, 병원시설 개선 및 관리, 병원 감염관리 인적 지원 등) 등이 있음을 명시했다. 백서 후반에는 ‘메르스 숙주는 낙타가 아닌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라고 언급하면서 감염병 관리 3대 주체(중앙정부, 지자체, 의료기관) 역량 강화와 함께 신종감염병 예방과 관리 활동 개선에 필요한 내용을 ‘우선 해결 과제’(질본, 보복부, 중앙정부, 국민에 대한 12개 과제)와 ‘지속 추진 과제’(질본, 보복부,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11개 과제)로 구분해 제시했다. 바둑에는 ‘복기(復棋/復碁)’란 것이 있다. 이미 둔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것으로, 패착(敗着)을 확인해 다음 대국 시 실수를 줄일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4년 전 발간된 470페이지 이상의 백서. 그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며 다가올 신종감염병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준비해야 하는 많은 과제를 제시했다. 메르스 발생 후 5년이 지난 지금, 누적확진자 10,765명, 사망자 247명(4월 30일 기준)과 사태 복구를 위해 100조 이상의 국고(국민세금) 투입이란 결코 가볍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 있는 대한민국. 지난 4년간 정부는 신종감염병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해왔는가? 지난 해 말부터 우한 사태를 지켜봐왔고, 1월 20일 국내 첫 환자, 2월 18일 대구 첫 환자가 발견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코로나19 사태 종식 후 정부는 아마도 백서를 발간할 것이다. 과연 어떤 제목과 내용을 쓸 것인가? 4년 전처럼 반성문만 적고 있을 것인가? 메르스 때처럼 지금도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이 사태를 극복하고 있는 의료진들과 국민들에게 정부는 그 답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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