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주의에 가려진 개인의 가치 복원
물질주의에 가려진 개인의 가치 복원
  • 황인옥
  • 승인 2020.05.0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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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권순왕 개인전
스타벅스 로고 등 소비문화 매개
시스템 속 생명 관련 진실 성찰
개념판화 개척 형식적 혁신 추구
프레인팅·판이즘 예술언어 제시
권순왕작가
권순왕 작가가 우손갤러리에서 두 번째 대구 개인전을 열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가 권순왕이 우손갤러리 개인전에 회화 작품 30여점을 걸었다. 판화, 사진, 영상, 디지털 이미지, 설치미술 등 다원주의적(Pluralism) 관점에서 발표해온 다양한 양식들 중에서 이번 전시는 회화 작품으로만 구성했다.

평면에는 동시대 기업의 마크나 로고에 친숙한 사물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작가의 개인적인 배경과 경험에 의해 선택된 친숙한 사물들이자 동시대 물질주의 사회가 낳은 산물들이다. 이 사물들이 화려한 색채와 어우러지며 거대한 추상 공간을 구축한다. 작가가 “물질주의 사회라는 거대 시스템 속의 개인, 자율성 그리고 생명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홍익대학교에서 판화와 서양화를 전공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작가는 형식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판화, 사진, 디지털 이미지, 설치미술 등의 형식들에 능동적으로 도전해 왔다.

그러나 주제에서 만큼은 통일성을 견지했다. 그는 주제를 서사적으로 풀어놓는 과정을 지적 담론의 길이라고 믿으며 하나의 담론에 깊이를 더해왔다. “이슈를 포착하고 그것을 전개해가는 과정이야말로 지적담론의 장이며 인식확장의 통로라고 인식하며 철학자의 사유에 버금가는 담론을 펼치고자 노력했다.”

그가 일관되게 지속해온 주제는 ‘가려진 지속’. ‘가려져 있지만 분명히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과거의 사실이 가려져 있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무르익으면 현재로 소환되어 재조명되는데, 이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난다는 논리다.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을 찾는다. 권 작가는 “작가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주제 ‘가려진 지속’은 역사, 이미지, 가려진 것, 시간, 복제, 생명, 자연, 개인 등의 다양한 키워드로 다채롭게 서술된다. 잊혀진 역사적인 인물의 이미지에 회화적인 행위를 가하며 새롭게 재조명하기도 하고, 혈액을 공급하는 씨앗이 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인간과 자연,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는 ‘물질주의 시스템에 의해 가려진 개인의 가치’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다국적 기업인 스타벅스 로고나 물질주의의 소비문화와 연결되는 이미지를 매개로 가려진 거대 시스템 속의 개인, 자율성, 생명 등의 가치를 성찰한다. “거대한 시스템이 우리를 움직이고, 그 안에서 역사가 작동된다. 그것을 해체시킴으로써 개인의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기는 역사를 다루고자 했다.”

모든 예술가는 혁신에 대한 의무를 부여받는다. 과거부터 동시대까지 인류가 이룬 성취들을 뛰어넘는 ‘최초성’을 제시할 때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다. 권순왕은 혁신을 논할 때 언급할 만한 작가로 꼽힌다. 혁신을 갈망해 온 작가적 태도 때문이다. 작가는 과거에 대한 답습보다 혁신성에 방향성을 두고, 새로운 미술 담론 형성에 몰두했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새로워야 한다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는다. 나 역시 나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권 작가에게 혁신성은 ‘개념과 형식’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모색된다. 개념적인 혁신은 ‘가려진 지속’이라는 주제 속에서 드러나지만 형식적인 혁신은 보다 다양한 양상을 띤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물화’로 드러난다. 작가는 미술사 속의 한 장르인 전통 ‘정물화’를 혁신적인 정물화로 확장한다. 과일이나 꽃 등의 전통 정물화 소재 대신 서술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들을 불규칙한 구도로 배치하며 추상성으로 표현한다.

권 작가는 국내에서 개념판화의 개척자로 통한다. 개념판화는 작가의 또 하나의 혁신 아이템이다. 그는 프린트(Print)와 페인팅(Painting)의 합성인 ‘프레인팅(Phrainting)’ 개념을 제시하며 개념판화를 확장한다. ‘과거의 잊혀진 기억을 이미지로 되살리고(Print)’고 ‘회화라는 표현법으로 현재성으로 복원하는(Painting)’ 과정을 ‘프레인팅’으로 명명한다.

이때 중요한 중요한 개념이 기억과 이미지다. “기억 속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것을 프린트, 즉 판화로 본다. 이 판화에 회화적인 기법을 더하며 예술철학적인 개념으로 확장했다.”

‘프레인팅’과 함께 언급되는 또 하나의 개념이 ‘판이즘(Phanisim)’이다. 판이즘은 이미지가 생성하는 과정에서 기억 작용이 필요하며 이러한 기억 작용 이후 신체성을 통한 그리기와의 융합적 과정에서 이미지는 '판'을 통해 물질적인 그림이 된다는 개념이다. 현재라는 관념을 역사와 기억의 문제와 연관 지으며 가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 판이즘과 프레인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보다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변곡점”이라고 언급했다. ‘프레인팅’과 ‘판이즘’이라는 작가가 새롭게 제시하는 개념을 세상에 공표하는 선언적인 전시라는 의미였다. “20세기에는 판화기법을 융합하는 작가는 많았다. 나는 그들을 아우르면서 21세기의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언어를 찾고 있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문의 053-427-7736.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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