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석 만난 궁중모란도, 형식 깨고 변주를 시작하다
괴석 만난 궁중모란도, 형식 깨고 변주를 시작하다
  • 윤덕우
  • 승인 2020.05.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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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모란도
궁중에서는…
생명의 찬양·생명의 만개 상징
병풍에 그린 탓에 나무는 직선
이파리 끝 태점으로 생명 강조
오랜 세월 거치며 양식 고착화
백성들은…
기존 회화에 없던 ‘괴석’ 추가
부귀영화·장수 염원 중점 표현
모란 화병에 꽂으면 부귀평안
몇 년 전 강진에 민화박물관이 개설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진을 방문했었다. 강진은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있고 세계모란공원이 있어 그 주변으로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있다.

모란은 선덕여왕의 일화에 등장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공주 시절(당시 당태종 시기) 때 당나라에서 온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지 않겠느냐고 추측했으며, 동봉된 모란 씨를 심었더니 실제로 향기 없는 꽃이었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이 일화의 다른 구전에서는 선덕여왕이 여왕인 시절에 이 꽃씨와 그림을 받았다고 나오며, 당 태종이 남편이 없는 자신을 비꼬려고 보냈다는 것까지 간파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이는 그 시절의 그림을 그리는 화법을 몰라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의 그림은 읽는 그림으로 생각해야 한다. 화가도 그 그림에 담긴 문구적 의미의 전달을 염두에 두고 그렸으며 감상자 역시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 그런 의미에서 모란도를 읽어보자.

당시에 중국에서 모란을 그릴 때는 나비와 고양이를 함께 그렸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며, 고양이는 모( )로서 70세를 상징하며, 나비는 질( )로서 80세를 상징한다. 즉 모란과 나비, 고양이를 함께 그리면 부귀모질이란 뜻이 되어 70~80세가 되도록 장수하면서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모란을 그릴 때 고양이를 그릴 수 없으면 나비를 넣을 수 없으므로 둘 다 빼고 모란만 그렸던 것이었다.

‘꽃 중의 꽃’으로 불리는 모란(牡丹)은 그 모양이 화려하고 풍염(豊艶)하여 위엄과 품위를 갖추고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라 부른다.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에서도 모란은 꽃들의 왕으로 등장하고 있다. 강희안(姜希顔)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 9등 품론이라 하여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할 때, 모란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꽃의 자태가 아름다워 화왕(花王), 연화왕(年花王), 화사(花師), 보상화(寶相華), 부귀화(富貴花), 낙양화(洛陽花) 등 이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모란을 한자로는 목단(牡丹)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목단(牡丹)’이 유음화되어 ‘모란’으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민화의 모란의 의미는 부귀와 명예를 상징한다. 또한 부귀영화를 의미하므로 여러 그루가 함께 어우러져 피어야 더욱 아름답고 그 의미를 바랄 수 있다. 이와 같은 상징성에 따라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그려졌다.
 

궁중모란도-병풍
<그림1> 궁모란도 4폭 전체 228.4cm X 233.4cm 두께 : 1.6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궁중모란도는 오랜 역사를 통해 극단적으로 정형화되고 양식화 되었다. 궁중모란도에 표현된 꽃을 보고 모란의 생태적 특성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 모란과 그림으로 표현된 모란과는 큰 차이가 있다.

모란나무는 거의 직선으로 세워서 그렸고 꽃은 일정한 양식이 반복된다. 꽃의 색깔도 빨강, 노랑, 자주색, 흰색을 중심으로 반복된다. 두 가지 색으로만 칠해진 이파리는 앞면, 옆면, 뒷면이 한꺼번에 표현된 형식이 반복되고 이파리의 끝에는 상상의 태점이 박혀있다. 옆으로 퍼지는 꽃나무가 일직선에 가깝게 세워진 것은 세로 그림의 형식 때문일 것이다. 또한 꽃의 모양이 통통하게 표현된 것은 선묘로 입체감을 드러내는 조형적 필요 때문이다. 이파리는 양식화된 하나의 모양을 반복적으로 그려 불필요한 시각적 혼란을 막아 통일감을 주었다. 꽃과 이파리의 반복은 시각적 집중력을 높이고 중독성을 가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이파리 끝에 붙어있는 태점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궁중모란도는 철저히 ‘생명의 찬양, 생명의 만개’라는 궁중회화의 내용과 미술 자체의 조형적 형식에 맞추어진 그림이다.
 

괴석모란도1
<그림2> 괴석모란도 2016년 이종임 작.

 
괴석모란도2
<그림3> 괴석모란도 2016년 이종임 작.

이제 민화의 모란을 살펴보자. 모란은 민중의 삶 속에서 다양한 포용성도 가지고 있다. 모란이 화병에 꽂으면 “부귀평안”을 의미하고 모란과 백두조(白頭鳥) 한 쌍을 같이 그리면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다. 모란꽃에 날아오르는 나비는 가정의 화목을 강조하며 남녀 간의 화합을 상징한다.
 

모란과나비
<그림4> 모란도 2016년 이은화 작.

보통사람들은 괴석이 들어간 모란 그림을 ‘부귀영화와 장수’, ‘오랫동안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니까 괴석의 상징을 장수로 본다는 말이다. 민화의 대중성을 획득하는 순간이고 궁중의 모란 그림과 차별화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볕이 완연한 어느날 무심히 서 있는 모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반가우면서도 곧 시들어 버릴 내일이 안타깝고 서운했다. 영랑의 시처럼 나도 내년의 찬란한 봄을 기다려야겠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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