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컨택트의 시대, 새로운 연결 앞에 선 전통시장
언컨택트의 시대, 새로운 연결 앞에 선 전통시장
  • 승인 2020.05.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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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한국애드 대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사용처를 두고 가족 내 갈등이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초기에는 기부 여부를 둔 갈등이 컸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사용처를 두고 벌어지고 있다. 덩달아 전통시장과 마트의 선호도 논란도 다시 등장했다.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전통시장을 이용 해야 한다는 의견과 모두가 힘든 요즘 어디서 쓰던 경제는 순환될 것인데 일부러 전통시장을 찾아갈 이유는 없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전통시장의 장점으로 상인과 고객 간에 만들어지는 유대관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제 ‘정’과 ‘인간적인’으로 대표되는 전통시장과 ‘편의성’으로 대표되는 마트의 프레임은 설득력이 없다. 전통시장은 충분히 편리해 지고 있으며, ‘정’과 ‘인간적인’의 수식어는 ‘관계 스트레스’에 민감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일반화된 비대면 서비스는 그동안 느꼈던 ‘관계 스트레스’의 해소에 크게 이바지했다. 온라인 쇼핑이 주를 이루었고, 거의 모든 배송 메시지는 ‘부재 시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대신 ‘문 앞에 두고 가세요’로 바뀌었다. 실제 택배사의 비대면 서비스 강화로 모든 택배의 문 앞까지 비대면 배송이 당연하게 되었으며, 택배 도착은 사진과 함께 문자로 확인한다. 과거에도 슈퍼마켓이나 마트의 배송서비스는 있었지만, 물건을 받기 위해서는 꼭 사람과의 대면이 있어야 했다. 배달 음식도 마찬가지다. 전화로 주문을 하고, 사람을 만나 음식을 건네받고 결제를 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배달 기사의 수고로움을 직접 봐야 했고, 여러 번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라도 하면, 눈인사 정도는 해야 하나 부담도 됐다. 배달앱이 등장하고, 주문과 동시에 결제를 하면서 문 앞에 음식을 두고 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졌다. 자주 이용하는 가게라도 배달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관계를 형성할 부담이 사라졌다. 이렇게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대면이 사라진 것이다.

일반 매장에서도 말이 줄어들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이미 키오스크 주문이 일반화되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주문을 위한 키오스크 설치가 늘고 있다. 커피를 사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더라도 주문은 ‘사이렌 오더’로 한다. 택시를 탈 때조차 모바일 앱으로 목적지를 입력하고 자동 결재를 선택한다. 말, 즉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 대화는 관계의 시작이다. 지속해서 관계를 맺는 사이는 대화로 관계를 시작하고, 갈등을 해소하며, 감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서비스를 받는 손님의 입장에서 서비스 제공자와의 많은 대화는 필요하지 않다. 불필요한(또는 과잉) 서비스는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스쳐 가는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적 반응(미안함 또는 고마움)은 그 자체가 불편함이라는 말이다.

다시 전통시장과 마트의 선호도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언컨택트에 비추어 본다면 전통시장은 불필요한 관계 요소가 너무나 많다. 품목마다 다른 상인을 만나야 하고, 가격표가 제대로 붙어있지 않는 상품의 가격을 물어야 하며, 가격을 깎거나 더 많은 상품을 얻기 위해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준 또한 애매하다. 할인의 적정선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덤으로 주는 양 또한 명확하지 않다. 반면 마트는 어떠한가? 묻지 않아도 금액이 적혀있다. 대화를 시도하지 않아도 할인이 적용되는 품목을 알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할인한다. 덤으로 주는 것 또한 ‘원플러스 원’이나 ‘묶음 상품’ 등으로 얼마나 더 주는지도 미리 알려준다. 무엇보다 내가 필요할 때만 점원을 찾으면 될 뿐, 계산대에 서기 전까지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무인 계산대마저 있어 계산을 마칠 때까지도 대화가 필요 없는 곳도 많다)

언컨택트의 시대, 전통시장의 자리는 사라지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언컨택트는 관계의 단절이 아니다. 사람과의 불필요한 직접적인 접촉을 줄이는 것이지 관계를 끊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비대면 접촉은 늘고 있고, 의미 있는 연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전통시장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결국은 ‘가치의 연결’이다. 먼 거리의 맛집을 일부러 찾아가고 번호표를 받아 몇 시간을 기다려서 먹는 요즘 세대에게 불필요한 관계 대신 전통시장만이 가진 가치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언컨택트의 시대, 대구의 60여 개 전통시장이 보여줄 이들만의 가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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