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밤하늘
  • 승인 2020.06.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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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박사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우선 거실의 모든 전등을 켠다. 거실의 전등은 모두 세 개인데 습관적으로 세 개의 스위치를 모두 누른다. 심지어 주말에는 낮에도 거실 전등을 켜 둘 때가 많다. 아내가 전기를 낭비한다고 싫은 소리를 하면, ‘어릴 때에 집안의 희미한 전등 때문에 성격이 우울해졌다’고 변명을 한다. 아내도 이제 전등을 끄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어둠이 싫어서 불을 켜 두고 잘 때가 많았다. 마침 성경에서도 어둠은 ‘빛의 부재’라고 하니 내가 어둠을 싫어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어둠을 좋아하게 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밤하늘 때문이다. 밤하늘은 빛의 부재가 어둠이 아니라 어둠의 부재가 빛이라고 알려준다. 우주라는 공간의 본질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저리 많은 별이 있는 밤하늘은 밝지 않고 어둡다. 그렇게 강열한 불을 가슴에 품고 있어도 별들은 밤하늘에 실낱같은 자취를 남기며, 모래같이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밤하늘은 공간에 달린 우주의 역사책이다. 그 까만 역사책은 빛의 속도로 사오 년 걸리는 별들, 몇 백 년, 수 억 년 걸리는 별들의 존재도 알려준다. 네 다섯 살짜리 어린 별 부터 수억 년이 넘은 늙은 별들도 모두 밤하늘이란 역사책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나 밤하늘의 백미는 역시 별자리이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곰 모양의 곰 자리, 사자 모양의 사자자리. 광활한 우주, 그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은 별자리에 자기 자리를 잡고 제 이름을 갖는다. 나는 북두칠성의 국자, 나는 사자의 머리, 나는 곰의 다리. 자리를 잡고 이름을 단 별들은 비로소 자기의 존재를 빛으로 발산한다. 너무 넓어 무의미하고 너무 많아 무질서한 별들은 그렇게 생명력을 회복한다.

별자리는 별로 별이 되게 하고, 인간으로 인간이 되게 한다. 별에게서 나온 인간이 별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별로부터 생명을 받은 인간이 도리어 그 별들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과 별은 그렇게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 밤은 그 별들이 더 돋보이도록 매일 일부러 까만 옷을 입고 나온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그래서 좋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일부러 전등을 켜지 않고 그 어둠을 천천히 느껴본다. 아침에 출근하면 일부러 책상의 조그만 전등만 켜고 조용히 어둠을 즐긴다. 다른 분들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 왔다가 내가 있음을 알고 깜짝 놀라며, ‘아니 불도 켜지 않고 뭐하세요?’라고 묻는다. ‘아, 예. 빛의 부재가 어둠이 아니고 어둠의 부재가 빛이랍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에 상대방은 뭔 말인가 하고 어리둥절 한다. 하긴 나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니 상대방이 이해할 리 없다.

일부러 전등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책상에 놓여있는 낡은 성경을 편다. 작은 전등에서 흘러나온 불빛에 창세기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수없이 읽고 묵상한 그 말씀이 갑자기 낯설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고? 저녁과 아침 사이의 그 낯선 시공간이 어느덧 밤하늘이 되어 마음을 파고든다. 이미 밤하늘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다시 또 그 손때 묻은 성경을 뒤적인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것은 밤이다. 첫째 날이니라, 첫째 날은 서수가 아닌 기수로 ‘하루’라는 의미, 기수로서의 ‘하루’는 일하는 시간인 낮과 쉬는 시간인 밤을 묶어서 ‘하나’라는 의미이다. 밤이 없는 낮이 하루가 아니듯 낮이 없는 밤도 하루가 아니다. 낮의 노동과 밤의 안식, 이 둘이 모두 있어야 온전한 하루가 된다는 의미일까? 히브리어 사전은 ‘저녁’이라는 단어가 ‘눈이 우두머리의 집을 보다’는 의미라고 알려준다.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은 우두머리이신 하나님의 집에서 쉬어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하루가 된다. 그렇게 혼자 해석하며 하나님은 빛만 아니라 어둠도 좋아하실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한다.

저녁과 아침 사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밤을 만드시고 낮에 일한 우리를 집으로 초청하여 쉬라 하신다. 그래야 온전한 하루가 된다 하신다. 밤은 어두워서 더 좋다. 기도할 수 있어서, 밤하늘을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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