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수학 강사가 ‘원자폭탄 제조’ 1인자로
보따리 수학 강사가 ‘원자폭탄 제조’ 1인자로
  • 김종현
  • 승인 2020.06.0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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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17) 노벨물리학상 사냥의 성패는 팔자소관
이탈리아 출생 ‘엔리코 페르미’
1924년 수학 강사로 활동하다
로마大 이론물리학교수 임명
이후 본격 원자핵 연구에 몰두
‘맨해튼 프로젝트’ 직접 참여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
하전 지니지 않은 중성자 발견
초기 핵 물리학 각종 모순 제거
193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노벨상-물리학상수상
2차대전 시기 물리학상수상자 다수가 원폭개발과 관련이 있었다. 그림 이대영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1891~1974)은 1932년 하전(charge)을 지니지 않은 소립자와 중성자를 발견해 초기 핵물리학의 각종 모순을 제거하고, 원자핵론 및 소립자론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1935년, “중성자를 발견한 공로(for the discovery of the neutron)”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채드윅은 영국 잉글랜드 체셔 볼링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외가서 성장했다. 맨체스터 그래머스쿨에 입학했으나 학비가 없어 포기했다. 이후 센트럴 그래머스쿨에 재입학했으며 부모와도 같이 살게 되었다. 1908년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에서 핵물리학의 아버지, 어니스트 러더퍼드 교수를 만나 3년 만에 졸업하고 졸업 후에는 연구 조수 자리를 얻었다. 1913년 석학 학위를 취득, 베를린공과대학으로 이동했으며 그곳에서 가이거 계수기(Geiger counter)를 발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체포되기도 했으나 종전 후 석방되었으며 러더퍼드 교수가 있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로 옮겨 그의 지도 아래 1921년 6월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곳에서 1932년 중성자를 발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의 원폭 제조 튜브 알로이스 계획에 참여했다.

1935년 리버풀대학교 물리학 석좌교수로 리버풀 연구소에서 연구하면서, 나치 독일 루프트바페(Luftwaffe, 독일 공군부대)와 서로 원폭 개발 경쟁을 했다. 1943년 퀘벡 협정으로 영국의 알로이스 계획은 미국의 맨해튼프로젝트에 합류되었다. 그는 1941년 세칭 모드 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제조비용이 수백만 달러로 예상된다고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팀장으로 역할을 한 공로로 1945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또한 과학 고문으로 임명되어 1948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곤빌 카이우스 칼리지 학장이 되었다가 1959년에 퇴임했다.

그의 저서로는 1932년 논문으로 ‘중성자의 존재 가능성(Possible Existence of a Neutron)’, 1951년‘방사성 물질의 방사능’, 1961년 ‘주니어 사이언스 백과사전. 제4권 : 중력에서 로그 라인까지’, 1962년 ‘넬슨 러더포드 논문집, 1권(Collected Papers of Lord Rutherford of Nelson, Volume 1)’, 1989년 ‘채드윅 : 개인적 인물 조명(Chadwick: On individual landscaping)’등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 원폭 제조·원자로의 최고 권위자

1938년 수상자인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854)는 이탈리아 로마 출생으로 1918년 피사 왕립 고등사범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독일 괴팅겐대학교의 맥스 보른 교수와 레이던대학교의 폴 에렌페스트로부터 첨단지식을 전수받았다. 1924년에 피렌체대학에서 수학 강사 자리를 얻었으며 1926년에 젊은 나이에 로마대학교의 이론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처음에는 상대성이론을 연구했으나, 로마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받고부터 원자핵 연구로 옮겼다. 1934년에 β붕괴 이론을 발표했으며, 복사 이론과 중성미자 가설(radiation theory & neutrino hypothesis)을 종합했다.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의 핵력 연구(nuclear power research)에 선행연구로 단서를 제공했다. “중성자 조사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방사성 원소의 존재에 대한 시연과 완 중성자(緩中性子)에 의해 야기된 핵반응 관련 발견”을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주요 연구는 단순하게는 모든 원소의 핵변환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완(緩) 중성자(slow neutrons)에 의한 핵변환에서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초우라늄원소(transuranic element) 및 핵분열의 연구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그는 무솔리니(1883~1945)에 의한 파시즘(fascism)의 압박으로 미국으로 망명해 컬럼비아대학 교수 자리를 얻었다. 핵분열, 2차 중성자의 방사 및 연쇄반응을 발견했고, 1942년에 시카고대학 야금 연구소로 갔으며 대형 원자로를 건설하여 핵에너지 제어 등을 연구했다. 원자폭탄 제조에 있어 맨해튼프로젝트에도 직접 참여하여 원자폭탄의 제조에도 기여했다.

그의 저서로는 시카고대학에서 발간한 엔리코 페르미의 논문집에 128편이 등록되어 있으며, 저서로는 1950년 ‘핵물리학의 한 과정(Nuclear Physics : A Course Given)’, 1951년 ‘초미립자(Elementary Particles)’, 1965년 ‘엔리코 페르미 논문집 2권(Collected Papers of Enrico Fermi, Vol. 2)’ 등이 있다.

◇ 행운과 불행으로 꼬여진 새끼줄 같은 인생을

1962년, 소련의 이론물리학자 레프 다비도비치 란다우(1908~1968)는 “응축물질 특히 액체헬륨에 대한 선구적 이론을 규명한 공로(for his pioneering theories for condensed matter, especially liquid helium)”로 단독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소련의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시에서 태어났다. 1921년, 13세에 김나지움을 졸업한 그는 대학에 가기에는 어린 나이여서 바쿠 경제 기술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1년 후인 1922년 바쿠 국립대학교에 진학해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했고 1924년에 다시 레닌그라드 대학교로 옮겼다. 1925년에 ‘스펙트럼선의 제이만 효과와 다중선 구조’라는 저서를 발간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으며 1927년 19살의 나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으로 레닌그라드 물리 공학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 했다.

1929년 소련 정부의 여행 장학금을 받아 1년 반 동안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은 그는 코펜하겐대학교에서 1922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닐스 다비드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를 만나 노벨물리학상에 대한 꿈을 싹틔웠다. 1930년 궤도 반자성이란 논문을 발표했으며 1934년 레닌그라드 물리 공학연구소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37년 카피차의 제안으로 모스크바의 와이로프 물리 문제 연구소 이론 부장을 맡아 액체헬륨의 초유동 문제를 연구했다.

1938년 소련 대숙청 때 UPTI 사건(우크라이나 물리 기술원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고 모스크바를 탈출했으나 1938년 5월 27일 체포 구속되었으며 내무인민위원회에서 유형(流刑)을 판결했다. 하지만 1939년 5월 29일 동료인 저온 실험물리학자 표트르 레이나도비치 카피차가 스탈린에게 란다우가 결백하고 신분을 보장한다는 편지를 써 석방되었다. 이후 1941년 액체헬륨 Ⅱ이론을 도출, 1946년 플라스마 진동(plasma vibration)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란다우 감쇠(Landau distribution)’라는 용어를 만들었으며 1950년 초전도 이론, 1956년부터 1958년까지 페르미 양자 유체의 일반이론을 전개했고, 제로 음파의 존재를 예언했다.

그의 저서로는 1935년 ‘금속 전도성(The Metal Conductivity)’, 1960년 ‘상대성이란 뭘까? (What is Relativity?)’, 1967년 ‘일반 물리학, 역학 및 분자 물리학(General Physics, Mechanics and Molecular Physics)’, 1975년 ‘고전적 필드 이론(The Classical Theory of Fields)’, 1977년 ‘양자역학 : 비 상대론적 이론(Quantum Mechanics: Non-Relativistic Theory)’, 1978년 ‘모두를 위한 물리학(Physics for Everyone)’, 1980년 ‘통계물리학(Statistical Physics)’, 1981년 ‘물리적 운동학(Physical Kinetics)’, 1982년 ‘양자전자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1984년 ‘연속 메디아 전기역학, 8권(Electrodynamics of Continuous Media)’, 1986년 ‘탄성이론(Theory of Elasticity)’, 1987년 ‘유체역학(Fluid Mechanics)’ 등이 남아 있다.

글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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