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재외국민 투표권 부여에 즈음하여
<대구논단> 재외국민 투표권 부여에 즈음하여
  • 승인 2009.02.08 15: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해외에 나가보면 가는 곳마다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쩌다가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는 수도 있고, 남태평양의 경치 좋은 섬에 여행을 갔는데 뜻밖에도 우리 말을 쓰는 동포를 만났다는 얘기도 흔히 나온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인의 해외진출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한국인들의 해외진출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조선조 말에 집단적으로 하와이 등에 노동이민을 갔던 역사가 있고 일제의 압박을 피하여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망명한 독립투사,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하여 남부여대로 만주 땅에 정착한 이들과 일본총독부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간 학병과 노무자의 징용이 고작이다. 그나마 광복 후에는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갈라진 남북관계는 6.25 동족상잔을 겪으며 극심한 대립으로 끊임없는 간첩논쟁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국내보안 망에서 일단 벗어나는 길이었기에 북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질 것은 당연하다. 그 중에서도 유럽에 유학하거나 일본에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이 걸려들었다. 일본에는 조총련 세력이 강력하여 언제라도 이들과의 접촉이 가능한 지역이었고, 유럽은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가 많을뿐더러 북한 유학생들도 다수였다.

따라서 아무런 감시 장치가 없다고 생각한 유학생들이 `같은 민족’으로서 이들과 자연스럽게 사귀었다가 나중에 자기도 모르게 간첩으로 지목되어 호된 고통을 당한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그들 중에는 간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고 갔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간첩단으로 몰린 이도 있을 것이지만 모든 것이 체제 싸움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는 민족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극히 제한된 사람들이 해외로 진출했지만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국군용사 등과 해외로 눈을 돌린 중동건설 붐에 힘입어 한국인의 해외진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게다가 살기 좋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이들은 너도나도 지푸라기 끈이라도 잡으려고 발버둥 쳤다. 단수여권도 몇 달씩 걸려 정밀신원조회를 거쳐야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5년 아니면 10년짜리 복수여권이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해외관광객으로 국제공항은 넘쳐난다. 관광객을 불러들여 먹고사는 나라마다 한국인을 유치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오려는 사람들로 동남아 일대는 난리 속이다. 코리아 드림을 꿈꾸는 외국의 젊은이들이 온갖 구박을 무릅쓰고 불법체류를 하는 모습도 흔하게 눈에 띈다.

이처럼 세계는 서로 오고가며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고 있다. 사람이 오고가니 대화가 통하고 말과 글을 서로 배우게 된다. 좀 많이 가진 나라가 베풀어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얻는 것이 더 많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길이 크게 열리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미국 중국 일본을 위시하여 200여개의 나라에 물경 750만 정도 된다고 한다.

이들이 어떤 경로로 그 나라에 정착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연방하원의원도 나왔고 시장 등으로 뽑힌 사람도 상당수다. 외국인이 정착한 나라에서 성공하는 첫 번째 길은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버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는 변호사나 의사 또는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에 진출함으로서 당당히 자신을 내세울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정치적 위상을 확립해야만 된다. 선출직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언어장벽, 문화장벽 등을 모두 이겨내야만 가능하다. 이들의 선구자적 노력으로 한국인의 우수성이 해외에서 명성을 떨치는 것은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다. 이제 한국을 빛내는 재외국민에게 국내선거 투표권을 주기로 결정되었다.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재 판결로 시행되는 정책이다.

국회에서는 만19세 이상으로 투표의사를 밝힌 사람에게만 참정권을 주되 투표방식은 재외공관에서만 하기로 합의했다. 시민권자는 제외되어 240만 명 정도만 투표권을 갖는다. 2012년부터 시행되는데 대통령선거와 국회 비례대표선거에 한해서 투표권이 부여된다. 투표권자 제한문제로 여야의 이해가 엇갈렸으나 비교적 합리적으로 타협되었다. 재외국민은 우리의 귀중한 자산이며 훌륭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투표권 부여를 환영하며 그 숫자로 봐서 선거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을 것이다. 또 고질적인 지역싸움도 예상된다. 이 고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모범적인 선거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짜야한다. 감시가 소홀하여 부정이 판치면 오히려 아니한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외국인들이 보더라도 질서정연하게 문화국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관계당국의 고뇌어린 설계도가 꼭 필요하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