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폐철 해체·용접 작품화…온기 ‘鐵鐵’
차가운 폐철 해체·용접 작품화…온기 ‘鐵鐵’
  • 황인옥
  • 승인 2020.06.2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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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오모크, 내달 15일까지 조각가 최영관展
말 타던 기억 떠올리며 ‘말’ 작품
따스한 세상 바라며 난로 제작
日 만화 ‘미래소년 코난’ 영감
오마주한 ‘스팀 로봇’ 만들어
센서 달아 관객 움직이면 불빛
소통할 줄 아는 존재임을 암시
나무 사용해 온화한 정서 유지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소신
재료 특성 불구, 윤기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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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관 조각가가 말을 형상화한 작품 ‘스팀 로봇’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갤러리 오모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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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팀 로봇’갤러리 오모크 제공
 
김영관작-스팀로봇
 ‘스팀 로봇’갤러리 오모크 제공

죽음 앞에 선 존재에게 새 삶을 부여한다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적어도 최영관의 철 작품에서 재앙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수집한 방앗간 발동기나 트렉터 바퀴 등의 철제 폐기물이 해체와 용접을 통해 철재 작품으로 거듭나자 죽은 철에서 삶의 온기가 넘실댔기 때문이다.

조각가 최영관의 철 폐자재로 만든 작품들이 갤러리 오모크에 모였다. 폐기물에서 분리한 철들에 수많은 용접과 땜질을 가해 만든 난로, 말, 사람, 우주선 형상들이다. 철을 재료로 한 까닭에 작품에서 한기가 느껴질 법도 한데, 전시제목은 정반대의 개념인 ‘스팀 로봇(steam robot)’. 형상은 제각각이지만 작품 제목도 통일되게 ‘스팀 로봇(steam robot)’이다. 작가는 차가운 철에 뜨거운 열기를 대입하며 반전의 연금술사를 자처한다.

“건축물은 태어나 웃고, 울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인간의 모든 삶을 품어 안는다. 작품 ‘스팀 로봇’도 그런 존재이기를 바라고 만들었다.”

폐철 로봇들을 보고 만화 영화의 한 장면이 데자뷰 된다면 작가의 감성과 정확한 일치한다. 그는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은 기계 문명 사회의 대립, 과학문명의 오용으로 종말의 위기에 처한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작가가 “작품 ‘스팀 로봇’은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다.

“어린시절 ‘미래소년 코난’을 통해 실체와 허상으로 세상을 인식했다. 내가 어릴 때 만화를 통해 습득했던 인식들 중에서 필요한 것과 관심 있는 것만 떠올려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했다.”

작가가 염원하는 세상은 따스함이 넘실대는 살맛나는 곳이었다. 그 염원이 따뜻함의 대명사인 철재 난로에 투영됐다. 철제 난로는 작가의 첫 철 작품이다. 난로에서 시작한 형상은 이후 말이나 우주선 등의 다양하게 선택되며 서사가 확장되어갔다.

환경파괴나 암울한 지구 미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작품 속 형상은 가볍게 간다. 주로 일상에서 만나거나 추억 속에서 아름답게 기억된 대상들이 선택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거대한 말’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말을 타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의 시각적 표현”이다.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작품 속 정서는 일관되게 ‘따뜻함의 온도’를 유지한다. 대신 재료를 다양하게 열어놓으며 서사를 확장해간다. 철로 시작한 재료는 나무나 플라스틱 등으로 다양하게 넓혀왔다. “철이 나무를 만나면 따뜻함의 결이 짙어진다. 이처럼 재료는 내가 표현하려는 정서와 맞으면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작가가 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어린시절 전라남도 해남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포항제철에서 근로자로 일했던 아버지와 가족들은 포항에서, 자신과 할머니는 해남에서 살았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작품의 정서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해남에서 성장했다. 포항제철 근로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은 그가 철을 친근하게 다루는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이 두드러졌고, 마을 노인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손자를 자랑스러워했고, 미술학원에 보내 일찍부터 재능을 개발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지금도 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리면 따뜻함이 차오른다.”

폐허가 된 미래도시를 상상하며 로봇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만든 로봇에서 차갑거나 두렵다는 정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한 철재 작품의 피부에서 윤기가 흐르고, 예술적 미(美)가 넘실댄다. 작가가 작품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예술론을 펼쳤다. “주제가 암울하더라도 예술은 잔인함으로 흐르면 안 된다. 예술의 목적은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있는 까닭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성실성과 짝을 이룬다. 그는 작품의 외적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내부까지 완벽을 추구한다. 온갖 수단을 강구해 작품의 내부로까지 들어가 외부와 동일한 밀도의 행위를 가하며 아름다움의 결을 견고하게 구축해 간다. 그가 “작품은 땀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노동을 통해 땀을 흘릴 때 나도 재미있고, 보는 이들도 즐겁다. 컴퓨터 그래픽에 메마름을 느끼는 이유는 땀이 없어서다.”

철재 폐기물을 재료로 하는 만큼 재료 수집에 들이는 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누군가의 삶의 편린이 묻어있는 폐기물들을 수집한다.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을 수집할 때까지 여행은 계속되며, 수집 비용 또한 만만찮게 소요된다.

공을 들인 만큼 작품에서 재료들이 만들어가는 서사는 간단치가 않다. 폐기물에 배어있던 어떤 이의 삶의 기억과 폐기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부가되는 작가의 추억이 작품 속에서 혼재되며 견고한 스토리를 장착된다. 작가가 “사람은 추억으로 먹고 산다”고 했다. “폐기물이 가진 추억과 내가 폐기물을 수집하면서 겪었던 추억이 혼재된다는 점에서 작품은 기억들이 쌓이고 쌓인 기억저장소에 해당된다.”

재료만 수집하면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재료를 보는 순간 서사와 형태가 결정되기에 막상 제작 과정은 작업실 선반에 진열된 재료들을 조합해 용접만 하면 될 정도로 복잡하지 않다. “지구 두 바퀴를 돌았을 만큼 용접을 했다”는 농을 던질 만큼 그의 작업량과 작업 속도는 엄청나다. 층고가 높은 전시장 천장에 작품이 닿을 만큼의 대형 작품들도 일주일이면 거뜬히 끝 낼 정도다.  작가가 “첫 마음이 흩어지기 전에 작업을 끝 낸다”고 했다. “처음 영감을 받았던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면 작품은 딴 방향으로 가게 된다.”

버려진 물건을 재생·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넘어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업사이클링(Upcycling)에 가깝다. 거의 모든 작품들에 바퀴가 달려있고, 작품은 조각이 설치되는 재단이 아닌 땅에 설치한다. 센서를 달아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나거나 불이 켜지거나 움직이기도 한다. 이 모든 장치들은 비록 철제 로봇이 인간처럼 생명을 가지고 소통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조각이지만 회화적이라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작품이 작가 인생의 총합이라고 했을 때, 이 귀결은 자연스럽다. 그는 청주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어린시절부터 미술에 두각을 드러내고, 고등학교까지 집안의 지원으로 미술학원을 다녔지만 할머니의 희망에 따라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회화의 세력이 워낙에 강렬해 추호의 의심없이 회화과를 갔다.

하지만 잘못된 만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회화 대신 조각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더라도 조각 작품에서 회화의 향기가 스멀거리고 그것이 그의 강점으로 부각되었다면, 결국 그와 회화와의 만남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작가는 삶과 예술 공히 ‘균형’을 중시 여긴다. 어느 한쪽에 욕망이 치우칠 경우 반드시 탈이 난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추구하는 가치다. 그런 까닭에 작품의 주제나 작업 강도를 설정할 때 신중함을 기한다. 욕망과 현실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 작품 판매에서도 균형점을 찾는다. 높은 가격으로 작가의 권위를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있으면 적정한 선에서 작품을 떠나 보낸다.

“균형을 찾으려는 것은 계속해서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타협이다.”

작가의 철을 다루는 기술은 점점 진화하고, 그에 비례해 작품도 진화를 거듭한다. 그런 까닭에 2~3년 전의 작품에서 빛바랜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애써 빛바램을 지워내려는 행위는 극도로 자제한다. 작품 수정에 신중을 기하는 편인 것. “2~3년전 내가 가졌던 감정은 당시 작업 할 때 최대치였을 것이다. 그것을 흩어놓고 싶지 않다.”

그가 노마드(nomad) 작가를 꿈꾼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겨진 재료를 찾아 세계를 여행하듯, 작품 활동도 여행지에서 직접 하고 싶다는 것. 그가 “나는 어디든 가서 작업할 수 있는 여행 작가를 꿈꾼다”고 했다. “특정 장소, 특정 공간, 특정 사람과 그곳에서 수집한 오브제로 작업하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여행하며 작업할 수 있는 작업 장비를 구비한 자동차를 꾸미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최영관 갤러리 오모크(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366 ) 전시는 내달 1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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