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 꽃 피운 85년 서도 외길…연구·논평 계속되길
법고창신 꽃 피운 85년 서도 외길…연구·논평 계속되길
  • 황인옥
  • 승인 2020.06.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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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 김만호의 예술세계를 찾아서] (51) 영면 이후-10. 2020
일평생 서법 연마·정신 수양 병행
강직하되 정교한 독창적 서체 개발
서실 봉강재 통해 수많은 인재 배출
비망록 120여권·작품만 800여점
제자들은 비석, 아들 미술관 건립
유작 보존·관리하며 매년 특별전
소헌김만호선생
만년(晩年)의 소헌 김만호 선생. 그는 구 한말 1908년에 출생하여 1992년에 타계하였다. 20세기 근·현대의 격동기를 거쳐 오면서 85년을 오직 서도(書道)의 외 길로 살아왔다.

◇소헌 김만호의 예술 역정(歷程)

소헌 김만호(1908~1992)선생은 근·현대 한국 서예계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서예가이다. 그는 영남의 필봉(筆鋒)으로 우뚝 서 있는 향토가 낳은 서예 거목(巨木)이다.

소헌 선생은 한평생 우리나라 서예 전통과 발전을 위하여 스스로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다했다. 그의 서실(書室) ‘봉강재(鳳岡齋)’는 수 많은 인재가 배출된 요람이었다. 많은 문하생에게 강조한 것은 ‘비인부전(非人不傳)’이며 ‘서여기인(書如其人)’이었다. 이는 서학인(書學人)으로서 서법연마와 정신수양의 병행을 선생 스스로 앞서 실천한 철학이기도 했다.

평생을 서예와 함께 한 길을 걸어 오면서 심정필정(心正筆正), 정관자득(靜觀自得)의 정신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조형의지는 수(守)·파(破)·리(離)의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창작품이 나왔다. 그의 글씨는 유연함 그 속에 강직함과 정교함이 함께 깔려져 있다. 가히 졸박유려(拙樸流麗, 꾸밈없는 가운데 우러나오는 우아함)하고, 박실색화(樸實色華, 순박의 자연으로 빛나는 화려함)한 소헌의 독창적 서체(素軒書體)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법고창신의 의지로 수(守), 파(破), 리(離)의 과정을 거쳐 온 소헌 선생의 예술 역정은 전체적으로 볼 때 다섯 단계의 시기로 구분할 수가 있다. 첫째 시기 1기는 의성에서 출생하여 상주에서 보낸 청소년(靑少年)시절의 학서기(學書期)이다. 2기는 대구 이주 후 선생의 50대 중년시절을 지낸 시기다. 1기와 2기를 ‘수(守)의 시기’로 본다면, 3기는 선생이 60대인 장년기(長年期)의 봉강재(鳳岡齋)시기로 ‘파(破)의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4기는 70대 만촌(晩村)에서의 노년기(老年期)이며, 5기는 만년(晩年)을 맞는 80대의 시기다. 4기와 5기를 ‘리(離)의 시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지만 각 시기마다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수·파·리(守·破·離)의 정신이 항상 바탕에 깔려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소헌 선생이 작고(作故)한지 어언 28년이 지났다. 선생은 구 한말 1908년 10월 19일에 출생하여 한국 근·현대의 격동기를 살아 왔다. 일제의 강점(1910)과 8·15광복(1945), 좌·우익의 갈등과 분열, 외세(美·蘇)의 개입과 대립, 남북(南北)분단, 대한민국 제1공화국 정부수립(1948.8.15), 북한 정권 수립(1948.9.9), 북한의 남침 6·25전쟁(1950). 4·19혁명(1960), 제2공화국(윤보선정권), 5·16혁명(1961), 제3공화국과 4공화국(박정희정권), 5·18민주화운동(1980), 제5공화국(전두환정권), 제6공화국(노태우정권)의 시대를 거쳐 왔다.

소헌 선생은 이러한 시기에 85년을 오직 서도(書道)의 외 길로 살아왔다. 선생은 1992년 3월 5일에 영면(永眠)하였다.

선생의 작고 1년 후(1993)에 ‘소헌김만호선생예술비’가 대구 망우공원에 세워졌다. 그리고 문하 제자들은 선생을 추모하는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으며, 타계 후 22년이 지난 2014년 11월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소헌미술관’이 만촌 언덕 위에 건립되었다. 소헌미술관은 1,000여점이 넘는 소헌의 작품과 유품을 보존 관리하고 있으며, 소헌 선생을 현창(顯彰)하기 위해 매년 ‘소헌특별전’과 ‘소헌문화예술아카데미’, ‘소헌서예포럼’ 등의 사업을 개최해 오고 있다. 지난 해 2019년 4월에는 수성문화재단 ‘수성아트피아’가 주관하여 작고작가 특별전으로 ‘心正筆正 소헌 김만호展’을 개최하여 소헌 선생을 재 조명했다.

지금 우리는 새 천년의 21세기에 살고 있다. 지난 20세기 후반, 우리는 조국 근대화를 위하여 산업화 과정과 아울러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경이로운 성장을 했다. 1960년대 이후 우리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미래 성장 동력을 열심히 찾아왔다. 60,70년대에 중화학공업을 육성했고 1980년대 조선 공업과 자동차 산업을 세계로 키워 나갔다. 90년대는 반도체와 통신을 키웠고,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구축으로 IT 강국으로 등장하고 그에 발맞추어 우리의 한류(韓流)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우리의 경제가 세계 10위권이지만 R&D는 미·중·일·독 다음의 세계 5위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현금(現今) 우리는 고도의 지식산업과 4차 산업혁명의 문화변혁시대에 와 있다. 과거 어느 시기에 겪었던 것보다 지금은 더 급격한 변환의 시대에 당면한 것이다. 지금은 기존의 것을 흘려 보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 문화의 변혁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나 정치(政治)가 그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듯, 현재가 과거와 싸우고 있으니 오늘은 물론 내일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안스런 심정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금년 2020년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3년 째 되는 해이다. 2월 초부터 전파된 중국 우한(武漢) 발생 폐렴 바이러스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이 시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서 4월 15일에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180석)이 야당인 미래통합당(103석)을 제치고 승리했다.

◇연재를 마치면서

필자는 2018년 9월부터 지금까지 1년 8개월 동안 ‘소헌 선생의 삶과 예술’을 일대기(一代記)형식으로 연도(年度)에 따라 본 대구신문의 ‘문화예술인’면에 50회 연재 기고해 왔다. 선생이 남긴 자료와 유품들을 꼼꼼히 살펴 사실(事實)을 가감없이 쓸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 자료들은 선생이 남겨 놓은 아래와 같은 유품(遺品)과 유적(遺蹟)들이다.

소헌 선생이 매년 몇 권씩 기록해 놓은 ‘비망록(備忘錄)’ 120여권과 선생 자신이 쓴 ‘약력초(略歷抄)’, ‘자작시문(自作詩文)’과 ‘감상록(感想錄)’, 선생이 집필한 ‘효시은거(隱居)’, ‘중화일편(中化一篇)’ 등의 저서와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찰(書札)들이다. 그리고 수 많은 작품구상 초록과 800여점의 완성된 작품 외 그 습작들의 방대한 자료들이다. 또한 선생 자신이 70세(1977) 때에 회고록으로 밝힌 매일신문 연재(7회) 「지난 날을 돌아보며」와 그 후 80세(1987)에 집필한 「나의 회고(回顧)」 연재(30회)는 직접적이고도 생생한 자료가 되어 주었다. 그 뿐아니라 각종 언론 등에서 보도된 기사와 필자의 기억들, 제자들과 지인들의 증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본 연재의 원고를 시작할 때 가졌었던 부담감 ‘아들이 아버지의 일대기를 쓴다는 것이 과연 적절하고 타당한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다 하지 못하고 마감하게 되는 아쉬움과 그에 따른 부담감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후학들에 의해 논술되는 ‘소헌연구(素軒硏究)’와 바르고 제대로 논평된 ‘소헌평전(素軒評傳)’이 나오길 마음으로 기대한다.

평소 글을 잘 쓰지 않아 왔던 필자의 둔(鈍)하고 졸(拙)한 문장 작문의 솜씨 부족을 실감하면서도 끝까지 집필을 지속할 수 있었음은 솔직히 주변의 격려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지난 20개월 동안 지면(紙面)을 할애해 준 대구신문 당국과 특히 졸고(拙稿)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끝>

김영태 영남대 명예교수(공학박사,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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