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이웃의 회복이 행복한 공동체의 출발
가정과 이웃의 회복이 행복한 공동체의 출발
  • 승인 2020.06.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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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리 가정복지회 사무총장
최근 계모에 의해 여행용가방에 갇혔다가 숨진 9살 어린이 사건과 부모에 의해 상습 학대로 화상을 입은 9살 아이가 쇠사슬이 풀린 틈을 타 위험한 지붕을 넘어 탈출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전에도 소풍날 계모에게 맞아 갈비뼈 16개가 부러지고 사망한 ‘서현이’사건이나 추운 겨울 화장실에 갇혀 끔찍한 학대로 사망한 ‘원영이’사건 등 끝나지 않는 아동학대 범죄소식에 대한민국 전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만1천715건이었던 아동학대사건이 2018년에는 2만2천356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학대의 가해자는 부모 76.9%, 대리양육자 15.9%로 아이를 보호하고 케어해야 할 보호자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학대의 발생장소도 가정 내 발생이 전체의 8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뿐만 아니라, 가정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끔찍한 사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온다. 지난 6월 15일은 노인 학대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노인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제정한 노인 학대 예방의 날이었다.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의 노인학대 신고 및 학대건수는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아동학대와 같이 노인학대도 대부분 가정 내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가해자 역시 대부분 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족 간 폭력과 학대를 포괄하는 가정폭력사건도 2018년 4만3천576건에서 작년 5만8천987건으로 35.4% 급증하였으며 구속·보호처분 등 실질적 처분을 받은 폭력사범 숫자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학대 및 폭력이 대부분 가정내에서 발생하여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다면 대한민국의 가정 내 학대와 폭력의 실상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파악된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적인 학대와 폭력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가족의 의미가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과 그동안 가족을 뒷받침해줬던 이웃의 역할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 우리사회는 옆집의 수저가 몇 벌 있는지 안다고 할 정도로 이웃과 교류가 많았고, 먼 친척보다는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며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하였다. 하지만 사회가 변할수록 이웃의 개념도 바뀌었다. 이웃은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눴던 공동체 구성원에서 이제는 나의 공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변하였다. 그로 인해, 누구가의 가정에 섣불리 개입하거나 애정을 담은 충고를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웃에 무관심해져 있다. 혼밥, 혼술의 문화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되었고, 고민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묻기보다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더 이상 우리는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이웃으로부터 관심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편해보이지만, 한켠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는 1938년부터 75년간 724명의 삶을 따라가며 전반적인 삶을 추적하는 성인발달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2015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월딩어는 ‘무엇이 행복을 결정하는가?’라는 주제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월딩어 교수가 밝힌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즉,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더 큰 권력을 가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에 비해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지 한번쯤은 돌아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정과 이웃의 가정, 우리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우리는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이제 잠시 멈춰서서 우리의 가정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 이웃의 가정도 기억하자. 이웃의 아이들을 기억하고, 이웃의 어르신을 기억하며, 이웃의 남편과 아내를 기억하자.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기억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기억하자.

지금 우리 주변에 폭력이나 학대로 고통 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가장 필요한 건 우리의 관심과 책임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사회는 더 이상 가방에 갇혀 절규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울음소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잠시 멈추어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고, 우리 이웃의 가정을 기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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