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조선팔도 누비는 소리꾼의 한과 가족애
'소리꾼' 조선팔도 누비는 소리꾼의 한과 가족애
  • 배수경
  • 승인 2020.07.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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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찾기 위한 부녀의 여정
장단잽이·땡중·몰락양반 가세
딸 중심으로 끈끈한 공동체 형성
또 다른 가족의 의미 되새기게 돼
익숙한 심청가·춘향가 등 차용
판소리 중심 한국형 뮤지컬 영화
소리꾼
 

1일 개봉한 영화 ‘소리꾼’은 소리로 시작해서 소리로 끝난다. 그만큼 소리의 역할이 크다. 조정래 감독이 전문연기자가 아닌 국악인 이봉근을 주연으로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연기가 다소 아쉽더라도 그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감독의 고민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영조 10년, 착취와 수탈로 서민은 고통을 받고 있고 인신매매범까지 날뛰고 있지만 관료들은 그들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뒷배가 되어 있다. 뛰어난 소리꾼인 학규(이봉근)는 신분이 미천하고 살림살이가 넉넉지는 않지만 솜씨 좋은 아내 간난이(이유리)와 딸 청이(김하영)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와 딸이 인신매매단에게 납치가 된다. 아내의 기지로 딸 청이는 탈출을 하지만 그 충격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아내를 찾기 위해 조선팔도를 떠돌아다니는 학규부녀를 따라가는 로드무비다.

이들의 여정에 장단잽이 대봉(박철민)이 가세하고 땡중과 보부상, 몰락 양반(김동완)과 시종 등이 더해지며 일행은 셋에서 다섯, 그리고 일곱으로 늘어난다.

가족을 찾기 위한 그들의 여정은 또다른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한다. 엄마를 잃은 청이를 돌보는 동행들, 함께 납치된 아이를 돌보는 간난이 등을 통해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판소리가 등장하는 영화는 자연스럽게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를 떠오르게 만든다. 감독이 대학시절 ‘서편제’를 보고 소리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학규는 자신의 재주를 발휘해 소리를 통해 사람을 모으고 그들에게서 아내의 소식 한자락이라도 듣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연기력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아내를 찾기 위한 절박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그가 즉흥적으로 지어 부르는 노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학규와 청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 ‘소리꾼’은 우리에게 익숙한 ‘심청가’의 기원을 보여준다. (물론 실제 판소리 ‘심청가’의 탄생과정과는 다르겠지만)

거기에 ‘춘향가’가 더해진다. 몰락 양반이 ‘금동이에 든 술은 백성의 고혈이요’라는 의미의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로 시작되는 글을 남기는 장면은 춘향가에서 차용해왔다.

다 아는 이야기라 결말 또한 예측 가능하지만 소리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조금은 생소한 판소리 가사는 친절하게 자막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심봉사가 눈을 뜨는 후반부의 클라이막스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하다. 탄탄하지 않은 스토리와 조금은 안이해 보이는 연출에도 불구하고 감동스러울 수 있는 것은 이봉근이라는 소리꾼의 힘이다.

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을 울려야 하는 목숨이 걸린 미션은 “어디 내 딸 좀 보자”며 “두 눈을 끔쩍 끔쩍...”하는 부분에 이르면 결국 관객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심봉사는 심봉사고 심청이는 심청이예요”라는 어린 청이의 대사는 부모와 자식의 입장차이를 떠올리게 하며 마음을 울린다. 아역배우 김하영의 연기도 놀랍다.

청이가 남경상인들에게 팔려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 역시 볼 만한다. 선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학규가 혼자 부르는 노래와는 다른 느낌으로 이 영화가 한국형 뮤지컬 영화라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심청전에서 공양미가 300석이 되는 과정, 뺑덕어미의 탄생 등도 흥미롭다.

초반의 어색함과 지루함을 극복하면 ‘심청가’ 완창을 제대로 듣고 싶다는 충동까지 생길 정도로 판소리가 가진 멋에 빠져들게 된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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