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걸친 화려한 금속공예…대백프라자갤러리, 정양희 퇴임전
회화 걸친 화려한 금속공예…대백프라자갤러리, 정양희 퇴임전
  • 황인옥
  • 승인 2020.07.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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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 넘는 ‘산 속의 정감’ 대표작
회화의 그라데이션 기법 차용
금박을 물감처럼 자유자재 사용
대범함과 섬세함 동시에 확보
40년에 걸친 작가 인생 총정리
흑백-정양희산속의정감3금적동
정양희 작 ‘산속의 정감’

흑백-정양희산속의전경금은적동
정양희 작 ‘산속의 전경’

차가움과 단단함의 대명사인 금속이 금속공예가인 정양희 앞에만 서면 고분고분하다 못해 말랑말랑해진다. 금속 표면에 그녀의 손끝이 닿으면 골 깊은 산이 솟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앙증맞은 고양이가 방긋 웃는다. 이만하면 금속에 관한한 주제자라 해도 반기를 들기 어렵다. 그녀가 “40년간 금속을 두드려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표현했다”며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금속공예는 내 예술적 혼을 불사르게 해준 평생의 동반자였어요. 금속공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어요.”

금속공예가 정양희 퇴임전이 대백프라자갤러리 전관에서 열린다. 1985년 효성여자대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1987년부터 35년간 재직해온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면서 여는 퇴임전이자 회고전이다. 전시에는 판금기법과 상감기법, 릴리프 기법, 칠보기법과 기하학이고 미니멀함부터 화려하고 감성적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 인생이 총망라된다.

정 교수는 퇴임과 동시에 신분이 변한다. 교육자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전업작가의 신분을 본격화한다. 서운함과 기대감이 교차할 법도 한데 정작 정 교수는 차분했다. “그동안 너무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는 속도를 낮춰서 제자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도 하고 싶고, 작업도 이어가고 싶다”며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들에 부푼 기대감을 표했다. 작가는 대구신세계백화점 맞은편에 작업실겸 사랑방으로 사용할 공방을 이미 마련해 놓은 상태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금속공예과 신설 초기부터 지금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금속공예 사관학교의 이미지를 구축해온 정 교수. 교육자로서의 결실 못지않게 작가로서의 역량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넘사벽의 작업세계를 펼쳐온 것. 대범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구사하며 금속공예 1세대의 견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예술적인 감각에 장인이 갖는 기술적인 완성도까지 갖춰야 하는 금속공예의 속성상 여성이 대형작품을 구사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정 교수의 작업은 거침이 없었다. 작업초기인 80년대에는 무생물의 금속에 대자연의 원초적인 율동과 생명감을 부여하며 정제되고 절제된 조형미를 발산했으며, 90년대 들어서면서 1,2미터가 넘는 대형 산을 표현한 ‘산 속의 정감’ 시리즈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금속공예로 1,2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을 한 작가는 거의 없었어요. 그때는 젊었고, 당시 제 생각은 규모 때문에 하고 싶은 작품을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공격적으로 작품을 했어요.”

2000년 들어서면서 산의 이미지를 변용한 조형물과 촛대나 화기(花器) 등의 한국 전통 형태와 문양을 번안한 특유의 기물들, 집이나 고양이 조형물 등을 선보였다. 작업초기부터 선보인 생활 속 금속주얼리 작업은 세월이 흐르면서 정교함과 세련됨을 더했다.

예술혼을 뒤흔들 정도로 영감을 준 대상은 없었다. 주로 일상에서 소소하게 감정선을 건드리는 대상들을 만나면 작업으로 형상화했다. 예컨대 거대한 ‘산(山)’ 형상 작업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은유다. 정 교수의 아버지는 평생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결혼 후 유학을 떠났을때도 유학 비용은 물론이고 작가 활동 시기에도 재료비 후원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게 든든한 산처럼 큰 존재였어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산 작품으로 표현했어요.”

정양희표 금속공예는 유난히 아름답다. 미니멀 하면서도 섬세한 조형미도 압권이지만 작품 표면의 형상은 회화 작품 못지않은 시각적인 유희를 담고 있다. 이는 정 작가 작품의 완성도를 이끄는 신의 한수다. 판에 형상을 새기는 릴리프(부조) 기법으로 만든 작품이나 동판을 두드린 산 작품 표면에 금이나 은박을 붙여 만든 형상들에서 금속공예에서 보기 힘든 형상들이 존재감을 발한다.

금속공예에 한껏 끌어들인 회화적인 요소는 정 교수의 이력과 관련이 깊다. 작가는 효성여자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일본동경예술대학교에서 금속공예로 석사를 마쳤다. “금속공예에 회화의 그라데이션 기법을 차용하고, 금박이나 은박, 색박 같은 재료를 물감처럼 이용해 붙여서 표면에 예술적인 미감을 들여놓았어요. 회화와 금속의 만남으로 작품의 깊이와 확장성이 훨씬 높아졌죠.”

정양희 하면 후학양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정양희 사단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고 창업까지 도우며, 제자 사랑을 실천해왔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 제자들이 있었듯이 이번 전시도 제자들과 함께 한다. 정양희 사단의 예술성을 엿보는 ‘은채회 회원’전을 전시 속의 전시로 구성한 것. “대구가톨릭대학교 금속공예 출신 전공자들의 성장이 두드러지는데 이들의 작품을 안 볼 수 없죠. 은채전을 통해서는 사제 간에 면면히 흐르는 열정의 예술혼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전시는 14일부터 19일까지. 053-420-801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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