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손님맞이(2)
[문화칼럼] 손님맞이(2)
  • 승인 2020.08.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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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지난 유월 더위의 기세로 보아 칠월은 대단한 폭염이 예상 되었으나 몇날 며칠씩 끊이지 않고 비가 내려 선선한 날들이 많았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유난스레 질긴 장마였다. 비 내리는 저녁이나 휴일, 손님맞이를 위한 것 이긴 하나 즐거운 마음으로 곧 만날 날을 기다리며 그분들의 책을 읽어 나갔다.

대구문화예술회관(DAC) 인문학 극장(8월19~21)의 첫날에 모실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인간에 대한 애정 가득한 따뜻한 글이었다면 마지막 날의 강연자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은 평범하지만 아픔과 애환이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거리는 아니었다. 2017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답게 제3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을 담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 정우의 애환을 그린 ‘풍경의 쓸모’중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이 문장이 책에 나오는 7가지 이야기를 관통한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는(입동) 그 사실을 잊은 듯 일상을 살아가지만 짙은 슬픔을 어쩔 수는 없다. 마른 듯 보이는 흙을 살짝만 걷어도 젖은 흙이 드러나는 것처럼, 웃음을 되찾은 듯 보이는 두 사람에게 젖은 슬픔은 시시때때로 배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작은 기쁨에 힘을 얻어. #.도화와 이수 두 젊은이의 건조한 삶(건너편)이 지금의 많은 청춘들의 일상인 듯하여 읽는 내내 마음이 서걱 거린다. #.천 여명의 사람이 각자 자기 혼자만의 언어로 살아가는 세계를 그린 ‘침묵의 미래’는 동시대, 같은 공간을 살고 있지만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세태와 오버랩 된다. 남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고독 속에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애란의 글을 읽고 나면 살짝 우울해진다. 하지만 결국 그가 그린 것은 우리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모습이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바탕 울고 나면 새로운 힘을 얻듯이 ‘바깥은 여름’ 역시 읽기는 힘이 쓰이지만 정화 작용을 시키는 에너지가 있다. 단단한 구성과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부터 얻는 바가 크다.

철학자 최진석은 서울 유명대학 교수에다 인기 있는 인문학 프로그램 강사였다. 정년을 제법 남겨두고 학교를 홀연히(?) 떠나 지금은 사단법인 ‘새말 새 몸짓’을 통하여 새로운 문화운동을 열어가고 있다. 그는 일전의 반야심경 강의에서 인간은 머물지 않고 건너가는 존재. 멈추면 부패하고, 건너가면 산다며 ‘건너가기’의 가치에 대하여 말한바 있다. 이 단체의 첫 사업이 한 달에 한 권을 읽는 ‘책 읽고 건너가기’이다. 누구나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 내공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데 책읽기가 최고이자 마법의 양탄자라고 말한다.

지난 7월 ‘새말 새 몸짓’ 책읽기 운동 첫 순서로 ‘돈키호테’를 선정했다. 덕분에 어릴 때 단편적으로 보던 이 책을 진득하니 읽고 있다. 왜 진득할 수밖에 없는지는 직접 보면 안다.기사소설에 푹 빠져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바라보는 돈키호테의 모습에서 오늘 날 한쪽에 경도 되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숭고함을 또한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원형이 아닐까. 아무튼 매우 두꺼운 두 권의 책이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처 7월의 책을 다 읽기도 전에 8월의 책이 선정 되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다. 최진석은 이렇게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이 있어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은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을 찾는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나에게 우물은 무엇인가. 나의 우물은 도대체 내 속 어디에 숨어있는가. 내가 별을 본다면 별도 나를 본다. 별에게는 내가 별이다. 내가 별임을 한 번이라도 알다 가자.” 돈키호테와의 여행이 끝나고 나면 어린왕자를 찾아 길을 나서야겠다. 어린 시절 읽은 어린왕자, 다시금 읽으며 우물과 별을 찾아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야겠다. 이러노라면 조금은 건너갈 수 있을까.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형형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최진석 교수와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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