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문제다
사람이 문제다
  • 승인 2020.09.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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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정책실장·경제학 박사
박근혜 정부시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서 수사외압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당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윤석열 팀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실무를 이끌면서 국정농단의 실체를 파헤친 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파격적인 승진 끝에 검찰총장에 임명되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핵심관계자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판사 경험이 있는 5선의원 출신의 추미애 전의원을 법무장관에 임명했으며, 검사 인사권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견제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에게 법의 지엄성을 강조한 전현직 법무부장관 두 명이 자녀문제로 법률위반 협의를 받고 있으며, 그들의 해명 과정이 오히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국민들의 받는 스트레스 지수를 임계치까지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법률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지는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문제와 직결되므로 덕치와 법치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된 계기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정치는 사회질서의 유지와 백성들의 경제적 필요성을 채워주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에는 강력한 법치를 통해서 하는 것과 왕을 비롯한 지배계층이 솔선수범함으로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법과 제도를 준수하고 인의를 행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공자와 같은 사상가들이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군웅이 할거하여 힘과 술수가 난무하고 백성들은 전쟁과 혼란 가운데 빠져서 고통당하고 있었다. 이런 백성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당시 사상가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렇다면 왜 공자는 덕치의 길을 선택하고 한비자는 법치의 길을 택했을까?

덕치를 주장한 공자는 논어 제2편에서 "백성들을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 인도하며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 할 줄도 알고 또한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고 했다. 공자는 강제적인 수단으로 백성을 다스리게 되면 도덕적 자발성이 약화된다는 인간본성을 간파하고, 법과 힘에 의한 강제는 자발적 복종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인간은 강요를 싫어하는 본성을 타고 났으므로 덕으로써 자발적 복종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비자는 법치를 주장했다. 한비자가 법치를 주장한 논거는 중국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라는 미소년 때문이다. 그는 용모가 수려해 왕의 사랑을 받았을 때는 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왕의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갔어도, 왕과 함께 산책을 하다 먹던 봉숭아가 맛있어 왕에게 건내줘도 왕은 벌을 내리기 보다는 효심과 충성심에 감동하여 상을 내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는 왕의 총애를 잃게 되었다. 어느 날 죄를 지어 왕에게 불려온 마자하를 보자 "저놈은 본래 성품이 좋지 못한 놈이다. 감히 법을 어기며 나의 수레를 타고 외출했고, 먹던 복숭아를 무엄하게도 나에게 맛보라고 주었다"고 하면서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한비자는 동일한 사건인데도 왕의 변덕과 재량권에 의해 정치가 비틀어지는 것을 보고 법치를 주장했다.

어떻게 보면 유교의 덕치사상 및 왕도사상은 이상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에 덕으로 백성들을 감화시키는 방법으로 통치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법과 제도가 잘 정비된 현대국가에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 마다 법률 제정을 통해 통제하려는 것은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가사상에 의존하여 힘에 의한 통치 끝에 짧은 시간에 멸망한 진나라의 예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사회문제는 법과 제도의 미비 보다는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향이 더 크다. 유교 사회에서는 군자가 통치하는 사회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학문과 인격을 닦은 군자는 세속으로부터 물러나 은둔하여 고고하게 살거나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론을 통해 도덕성을 갖춘 관료가 결정하는 정책이라도 안한 것만 못하다고 주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관료들은 Š치적인 중립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부여한 일을 소신있게 하는 것이 군자의 도요 위민정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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