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우물은 필요 없다
그런 우물은 필요 없다
  • 승인 2020.09.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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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애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회장
왜 장애인은 분리되어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살아야 하는가. 왜 장애인부모는 가족이 아니면 결국 시설이라는 곳으로 나의 자녀를 보내야만 하는가. 왜 시설은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식으로 평생 장애인과 그 가족의 목숨 줄을 쥐고 흔드는 것인가. 국가가 책임지는 탈시설과 지역사회 통합 정책만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수용시설에 저당 잡힌 장애인과 부모의 삶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더 이상 다른 우물을 파지 마시라. 장애인은 고인 물을 원하지 않는다. 중증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자녀를 지닌 부모라고 해서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던 시혜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가 할 일은 우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라는 새로운 물길을 트는 일이다. 우물을 만들어 울타리를 치는 일이 아니라, 울타리를 허물어 장애인도 지금 사는 곳에서 맑은 물을 함께 마실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물을 마시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권리’라 부른다. 흔히 장애인의 ‘자립’을 두고 독야청청 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간을 분리하여 사람들을 한 데 수용한다. 하지만 그런 자립은 없다. 비장애인도 나 홀로 모든 것을 해내는 자립은 불가능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장애인에게도 자립은 주체적으로 소통하고 의존하며 연대하는 삶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함께 살 수 있고 함께 살 수 없는가라는 구분이 아니라, 어떻게 중증의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여기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다.

2008년 우리나라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협약의 내용 전반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지역사회와 분리되어 집단으로 모여 살아가는 방식의 삶을 인권침해로 규정한다. 또한 그 어떤 장애인이라도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우물이라도 찾아야 하는 장애인과 부모의 답답한 심정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시설이라는 우물을 허물고 다시 탈시설과 통합이라는 물길을 내는 일이 이토록 더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우물이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정책을 통해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말한다. 대구시는 탈시설 정책을 통해 새로운 물길을 내어가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마저 기존 시설정책을 지역사회 중심의 거주서비스로 전환하겠다며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사태 등 크고 작은 시설문제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대구에서 ‘우물’을 운운하는 고고한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에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우리 부모들이 삭발을 하고, 유치장에 갇히고, 뙤약볕 아스팔트를 수십키로씩 삼보일배를 했던 이유는 우물로 들어가고자 해서도, 우물이 더 많아지길 원해서도 아니다. 우물 없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다. 나의 자녀를 내가 더 이상 돌볼 수 없을 때 ‘보호’를 이유로 피눈물 나는 감금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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