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에 함몰된 인간사회 모순 시각화
이기심에 함몰된 인간사회 모순 시각화
  • 황인옥
  • 승인 2020.10.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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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MOON101 김철환展
외부 생산물 대한 경외심 비판
손톱 등 인체 허물에 가치 부여
철거 직전의 주택가 촬영 사진
텍스트 소재 평면 작품도 선봬
김철환작
김철환 작.

네일샵에서 팔을 뻗으면 네일 아티스트가 손톱을 깎아 다듬은 후에 손톱 위를 현란하게 치장한다. 손톱이 귀한 대접을 받는 순간이자 잘려진 손톱의 잔해가 더러운 부산물이라는 낙인이 찍혀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시점이다. 작가 김철환은 신체로부터 잘려 나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손톱 잔해들을 정성스럽게 수집해 박물관 유물처럼 재현해 귀한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갤러리 MOON101에 전시된 작가 김철환의 작품 ‘내가 생산한 것’ 연작이다. 그가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인체의 허물들과 외피에는 손톱, 발톱, 얼굴 각질, 수염, 음모, 항문 털 등이 있다.

손톱이나 수염 등의 인체 부산물이 유물에 버금가는 귀한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핵심 개념은 ‘의미부여’. 작가에 의해 손톱이 박물관의 유물과 동일한 존재감으로 의미 격상이 진행되고, 종국에는 작품의 지위까지 획득하게 되는 것. 작가는 유물과 인체 부산물이 보물로 격상하는 과정에서 유사성을 찾고 있다.

‘내가 생산한 것’ 연작의 출발선에는 작가의 냉소적이 시각이 있다. 그는 박물관에 전시된 빗살무늬토기에 환호하는 관람객들을 지켜보며 인류의 결과물들을 무비판적으로 과대 포장하는 문화를 발견하고, 그런 태도에 의문을 던진다. “잘려나간 손톱이나 인간이 만든 생산물은 필요에 의해 사용하다 버려진 것들인데 인간이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요. 유독 인간이 만든 외부적 생산물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위대한 업적으로 계속 과대 포장하는 문화가 존재하죠.”

살아가면서 필요에 의해 생산된 도구들에 대한 경외는 인간 외의 그 어떤 존재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태도다. 작가는 과대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들의 생산물에 환호하는 인간 태도의 뿌리에 “오만함이 있다”고 강변한다. 그 오만함 속에는 인간만이 성취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태도가 배어있다. 작가는 이 오만함으로부터 인간과 인간외의 존재들 사이의 문제들이 야기됨을 깨닫는다.

작가는 “인간이 도구로 만든 것들이 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과나무가 사과를 만들 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권능을 긍정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 중 하나로 이기심을 들 수 있다”며 “그 이기심이 인간을 자연 위에 군림하게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이번 전시에는 재개발을 위한 철거 직전의 주택가를 촬영한 사진 작품들도 걸렸다. 인간의 이윤이나 효율성이라는 이기심에 함몰된 인간사회의 단면에 대한 질문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사진 속에는 7~80년대 선진국의 중산층을 카피한 주택들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담겨있다. 긴 세월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필요에 의해 건물이나 골목의 구조물에 인간의 손길들이 덧대어진 흔적들과 세월의 풍파에 빛이 바래고 녹슨 모습들도 가감없이 담겼다.

작가는 “사람들이 떠나고 뜯겨지기 직전의 주택 구조물에서 자연물을 발견한다”고 했다. “너무 오래 사용해서 그 자체로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 삶의 역사들이 그에게는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감동적이며,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 자연적이며 인간적인 것에 대한 발견은 현대건축물이 주는 비인간적이며 비자연적인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부터 왔다. “생활공간 디자인에는 거주하는 사람의 입장이 반영돼야 하는데 현대건축물에는 그런 것이 빠져있다. 그것은 우리의 정서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단순히 편리나 이익으로만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전시에는 텍스트를 소재로 한 평면 작품도 걸렸다. 음료나 과자 봉지에 표기된 경고문을 소리 나는 대로 동판에 영어로 표기한 작품이다. 경고문은 중요한 문구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지는 않는다는 것에 착안했다. 이 작품 역시 텍스트가 소통에 편하다는 이유로 과대포장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에 해당된다. 그는 “눈빛이나 몸짓 등 소통에 필요한 수단은 다양할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텍스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서두를 꺼냈다. “우리가 너무 하나의 단어에 집착하는데 그럴 본질이 달라질 여지가 커집니다. 선진국일수록 말할 때 얼굴 표정이나 다양한 제스처를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더 깊이 이해하고 소통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봅니다.”

작가에게 비치는 현대 사회는 비인간적인 효율이나 이윤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효용 가치를 다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존재들로부터 역설적으로 비인간화로 치닫는 현대사회의 모순을 발견한다. 하지만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귀결점은 그 너머에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미래’다. “저는 인간 중심인 미래 세상을 향한 길목에서 현재의 모순을 시각화하고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전시는 갤러리 MOON101에서 8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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