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하게 바라본 우포늪, 파리지엔·뉴요커가 열광했다
겸허하게 바라본 우포늪, 파리지엔·뉴요커가 열광했다
  • 황인옥
  • 승인 2020.10.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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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아트갤러리, 정봉채 개인전
행복한 20년 우포지기
사진에세이 ‘지독한 끌림’ 출간
차에서 10년, 움막생활 4년…
365일 중 300여일 새벽 촬영
해외 컬렉터가 사랑한 작가
오스트리아 아트페어 등 초대
상하이서 작품 솔드아웃 기록
개인전 기다리는 ‘찐팬’ 다수
우포늪
정봉채 작.

정봉채 사진작가
정봉채.

안개 자욱한 늪 가운데 작은 배 한척이 외로이 떠있다. 저 멀리 노 젓는 뱃사공의 어깨 위에도 희미한 안개가 바스락 거린다. 사진작가 정봉채가 우포늪을 촬영한 사진인데, 지난 10월에 출간한 그의 사진에세이집 ‘지독한 끌림’의 표지사진에 실렸다. 에세이집 제목이 ‘지독한 끌림’이다. 제목에서 벌써 마음이 떨린다. “무엇인가에 지독하게 끌려본 적이 언제였던가?”에 대한 자조어린 한탄과 ‘지독한 끌림의 대상을 만난 그는 얼마나 행복할까?’에 대한 부러움이 동시다발적으로 스친 까닭이다.

도대체 어딘가에 지독하게 끌린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할까? 얼마나 끌렸으면 지독하게 끌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지는 되어야 이처럼 지독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책 제목만으로는 누가 무엇에 얼마나 끌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단초는 있다. 우포늪의 심연을 담아낸 표지사진에서 정 작가의 우포앓이가 읽히기 때문이다.

우포늪과 정 작가 사이 애정관계의 전말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느 일방의 외끌림은 섣부른 결말.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수록 작가가 우포늪에 동화되어 간 여정과 우포늪이 정 작가를 품어준 넉넉한 배려가 글과 사진에 오롯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쯤에 둘 사이 스토리의 결말이 쌍방 간의 끌림, 해피엔딩임이 수줍게 드러난다.

정 작가는 “고등학교 때 처음 우포를 마주했다. 그때 첫인상이 오래전 살았던 본향에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며 회상에 젖었다가 이내 “시간이 지날수록 우포가 내 안으로 걸어 들어와 내 영혼의 풍경이 되었고, 나도 우포 속으로 들어가 우포의 일원이 되었다”며 그와 우포늪 사이 끌림의 썰을 풀어냈다.

사진작가 정봉채가 지난 10월에 우포 사진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최근에 고도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했다. 책에는 작가의 우포늪 사진들과 우포늪에서 사유하고 깨달은 산문들이 실렸으며, 전시에는 그가 바라본 우포늪이 걸렸다.

대한민국 남쪽의 작은 늪에서 조용하게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해외 미술애호가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가 우포늪 사진작가로 급부상한 것은 2008년 무렵이다. 이 시기에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메이저 갤러리인 줄리아나 갤러리에 전속되어 중국 상하이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소개된 작품들을 솔드아웃(완판) 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여세를 몰아 2009년부터는 스위스 아트바젤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빈, 싱가포르 등지의 아트페어에 초대되는 등 세계로 활동무대를 넓혀왔다.

그의 사진을 사랑하는 해외 컬렉터들은 찐팬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개인전 소식이 들리면 단숨에 달려와 작품을 구매하는 팬들이 있다. 뉴욕 개인전에서 만난 컬렉터와의 일화는 특히 유명하다. 디자인 회사 대표인 한 컬렉터가 작가의 1m 사이즈의 작품을 구입하고 1년 후 같은 사진을 3m사이즈 구매를 의뢰한 것.

처음부터 그의 우포늪 사진에 세상의 관심이 쏠린 것은 아니었다. 우포늪 사진을 평생 찍겠다고 결심하고 우포늪에 살다시피 하면서 10년간 우포늪을 촬영했지만 돌아온 세상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가 “내가 찍은 사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사회통념에 부합하는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함몰되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는 좋은 사진들을 찍으려 의식했던 시절이었어요.”

우포의 사진을 담은 지 10년째 되던 해에 그는 “나는 안 되는구나”라고 자책하며 우포를 떠날 결심을 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어느 날 새벽, 동 트기 전 사지포의 후미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지포를 응시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서 움직임 하나가 포착됐다. 70m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50m, 30m 점 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달려오던 동물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고라니였다.

그때 공교롭게도 필름이 떨어졌다. 자동차에 가서 필름을 가져올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포기하고 고라니의 시선을 응시했다. 사지포 마을에서 경운기 소리가 나자 고라니는 숲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때의 사건은 그의 작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지난 9년간 저도 우포늪을 바라보았지만 고라니도 저를 바라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처음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우포늪은 지키는 기간만큼 우포늪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제가 10년간 자동차에 기거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제 자동차 옆에서 가끔 자고 가는 고라니가 있었어요. 그 고라니가 제게 달려왔던 고라니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가 사진을 대하는 관점이 완전히 변했다. 고라니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웠다. 겸손이었다. 겸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귓전을 스쳐갔다. 우포늪이 그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보고 싶은 자에게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저를 낮추자 우포늪이 제게 곁을 주었어요.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했죠.”

그 사건 이후에 그의 사진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우포늪 사진들에서 찾을 수 없는 그만의 우포늪 사진들을 담기 시작한 것. 사진이 변하자 세상의 반응도 변했다. 줄리아나 갤러리가 손을 내민 것도 그때였다. “나의 이런 변화를 누가 알아주겠나 싶었지만 아니었어요. 바로 관심이 왔어요.”

우포늪에서 좌절도 겪고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우직하고 겸손하게 늪을 바라본 그에게 우포늪이 준 선물이었다. 그는 자동차 생활 10년, 움막생활 6년을 보내고 4년 전에 우포늪 인근에 집을 짓고 우포지기로 살았다. 내친김에 올해 작은 미술관을 직접 짓고 가 개관까지 했다. “이제는 흔들림 없이 평생 우포늪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에 위치한 우포늪은 35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최대의 자연늪지다. 일출과 일몰, 물안개, 늪이 만들어내는 생명의 신비가 경이로워 사진작가들의 성지로 꼽힌다.

우포늪은 작가의 사진인생에서 종착지다. 고등학교 시절 용돈을 모아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고 대학에서 영화사진써클에 들어가면서 사진예술이 본격화되었지만 전업작가를 선언하기까지 부침의 시간을 지나왔다. 전업 작가 선언 이전에 그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취업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얼마 못가 그만두고 교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교생활 역시 허허로움의 연속이었다. 목까지 차오르는 사진에 대한 갈망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업하면서 마음은 ‘지금쯤 어디가 사진 찍기 좋을 것인데…’ 하는 생각만 했어요.”

교편을 잡은지 13년째 되던데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전업작가 선언이었다. 3년만 더 근무하면 연금수급자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벼랑 끝 전술을 택했다. “경제적으로 기댈 곳이 없어야 치열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할 것 같았죠.”

사표를 던질 때 내심 “사진으로는 자신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없지 않았다. “사진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충천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교만이었죠.” 우포늪에서 그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겸손으로 바뀌었다.

같은 우포늪이라도 매일이 다르다. 날씨와 바람과 우포늪을 품은 생명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드는 기운이 다르기 때문. 작가는 그 중에서도 겨울 우포늪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물론 좋은 사진을 얻을 확률도 높다.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는 겨울은 오히려 우포늪이 가득찹니다. 겨울은 피사체들이 사진 속에서 발언을 하는 계절이죠.”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이거다”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긴 기다림을 견뎌야 한다. 작가는 1년이면 강연과 전시를 제외한 300일 이상을 새벽에 늪에 나가 해가 지면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한다. 지난 20년간 이 긴 기다림은 지속됐다. 작가는 “그 긴 기다림 속에서 존재와 존재의 진정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정 작가가 우포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가 “마음의 정화(淨化)”를 언급했다. 정화는 정 작가 사진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나는 우포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우포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우주를 느끼지요. 내가 우포늪에서 정화되었듯이 세상 사람들도 나의 우포늪 사진을 보고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정화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고도아트갤러리 정봉채 개인전은 3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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