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 나는 ‘제작’한다…60여년 사진세계 조명
재현? 나는 ‘제작’한다…60여년 사진세계 조명
  • 황인옥
  • 승인 2020.10.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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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미술관, 장진필 ‘흔적’展
국내 예술사진계 산증인
기록에 의미 국한됐던 1960년대
기획·연출·촬영한 사진 재구성
혁신적인 방식으로 업계 큰 반향
1970년대 현 문광부 장관상 수상
CG, 한계없는 연출의 시작
대표작 ‘천로역정’
반가사유상·용·교인·수문신…
실존 대상과 상상의 대상 합성
천로역정
장진필 작 ‘천로역정(天路歷程)’

장진필-인물사진
사진이 보편화되고 사진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진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품위있게 표현하면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성’일 것이며, 쉽게 풀면 ‘남다른 특별함’이 될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만 해도 사진에 거는 기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기록’이나 ‘재현’이라는 1차원적인 역할이 요구되었고, 풍경이나 인물을 멋있게 재현한 사진가에게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인식이 한 방향으로만 향할 때 사진작가 장진필(사진)은 ‘이단아’를 자처했다. ‘재현’에만 충실했던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을 갈구했다. 작업방식이나, 형식, 전시 형태 등에서 사회통념을 넘어서고자 했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행보를 ‘사진 예술의 새로운 방향성 제시’라는 척박한 길로 이끌었고, 작가 인생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새로운 사진미학을 찾아가는 개척자적 삶’을 사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진 작가 60년은 ‘남다른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진을 계속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로 사진작가 장진필 개인전이 소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흔적’. 말 그대로 사진작가로 살아온 60여년의 흔적을 시대별로 조망한다.

사진작가로 교육자로 평생을 살아 온 장진필은 고교미술반장으로 미술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사진작가로서의 삶이 본격화 되는 시기는 1968년. 사진 서클인 대구 ‘광화회(회장 강상규. 부회장 신태래)를 창립해 총무를 맡고부터 대구 사진계의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그 자신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국내에 사진예술이라는 인식이 희미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사진계를 지켜온 장진필은 우리나라 예술사진계의 산증인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남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사진으로 개인전을 29회나 개최하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교류전 등 다수의 초대전에 참여하며 존개감을 키웠다. 그는 일본, 캐나다, 이태리 등 다수의 해외 초대전과 평양과 서울에서 열린 남북사진교류전(백두산 4계) 등의 국내 초대전에 참여했다.

지난 7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사진미술관 건립을 위한 사진아카이브전시에 참여하며 85세의 나이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계명대학교극재미술관, 홍익대학교박물관과 일본 森미술관, 캐나다, 이태리 등 국내외 유수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 작가의 사진미학은 ‘주제’와 ‘연출’라는 두 요소로 견고하게 맞물려있다. 매 개인전마다 주제전을 기획, 일찍부터 사진예술에 작가적인 담론을 펼치고자 했다. 주제에 최적화된 사진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연출’ 기법도 적극 활용했다. 이 기법은 말하자면 ‘제작하는 사진’ 또는 ‘만드는 사진’이다. 작가가 대상에 개입해 대상의 질서에 작은 균열을 내고 촬영하는 직접적인 연출이나 촬영한 사진들을 조합하여 재구성하는 간접적인 연출이 기법이 해당된다.

그의 시대를 앞서간 혁신성은 단숨에 세상의 관심을 모았다. 사진을 본격화한 1971년에 작품 ‘물놀이’로 문공부(현 문광부) 장관상을, 십자가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수녀를 촬영한 사진으로 1975년 문공부 장관상을 연거푸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는 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이던 시절이었고, 사회 분위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수녀원을 찾아가서 촬영 의도를 말씀드리고 수녀님이 십자가 앞에 엎드리고 ‘평화를 구하는’ 사진을 촬영했어요.”

당시만 해도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게 의도적으로 연출해 사진을 찍는 방식은 시도되지 않던 낯선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당시 사진계의 통념에서 보면 이단에 가까웠지만 혹평보다 찬사가 쏟아졌다. 당연히 그는 더욱 고무되었고, 사진에서 추구했던 혁신성은 확장일로의 길을 걸었다.

사진 이미지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컴퓨터 그래픽이 출연하자 그의 혁신성은 끝간데없이 앞서나갔다. 온라인상에서 한계 없는 연출이 가능해지자 다양한 형식의 사진들을 속속 발표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주제의 강화로 연결되었다.

컴퓨터 그래픽 기법으로 제작된 대표작은 ‘천로역정(天路歷程)’과 ‘구원의 길’이다. ‘천로역정’은 여행지에서 해골과 유사한 형체를 찾아 촬영하고 또 지옥문을 떠올리자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반가사유상을 찍고, 사찰 입구를 지키는 수문신인 금강역사와 할머니들 사진을 촬영해 해골 이미지를 중심으로 배치하고, 하늘에는 용의 이미지를 붙이는 식으로 합성해 만든 작품이다.

작품 ‘구원의 길’은 가톨릭 대구대교구 주교좌 성당인 범어성당 복도에서 목발을 짚고 있는 두 명의 인물을 설정해 촬영하고 지하에서 촬영한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을 표현한 조각사진을 합성했다.

“내 아이디어에 맞게 스토리를 구성해서 촬영을 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 사진에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지요.”

혁신적인 사진을 추구하지만 그의 의식은 늘 현재성에 집중했다. 자연이나 인간 등 실존하는 대상을 피사체로 하는 것. 이때 현재성은 자칫 다큐멘터리로 흐를 개연성이 짙어지는데 작가는 연출 기법으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흩트리는 효과를 발휘했다. “저는 단순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추구하지 않았어요. 저의 통찰이나 메시지가 깊이있게 표현되는 사진을 원했죠. 그것을 위해 연출이나 재구성 기법을 활용했어요.”

‘만드는 사진’은 촬영할 대상에 작가가 의도적인 연출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촬영한 복수의 사진들을 하나의 주제 속에서 조합하는 엮음 방식을 구사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1차적인 재료가 되는 개별 사진을 요구한다.

사진 찍는 기술자로 살기보다 예술가로 살아가기를 희망했던 천상 사진작가 장진필. 사진에 예술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그가 염두에 둔 것은 구상적이고 조형적인 스타일이었다. 그 조형성과 구상성을 위한 첫 단계에 필요한 것이 재료사진이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서 재료사진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곳곳을 누비며 재료사진을 담아온 이유이며, 그의 사진이 시대를 앞서갈 수 있었던 전제이기도 했다.

“산과 바다, 저녁과 새벽, 꽃과 사람 등 대상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촬영했어요. 많은 재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어요. 같은 장소에 몇 번을 찾아가서 기다리며 원하는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어요.”

85세의 나이에도 그의 열정은 현재진행형. 내년 대구비엔날레 기간에 ‘누드’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누드 사진은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장르지만 또 한번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가 누드 사진 역시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카메라는 작품을 위한 하나의 기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완성은 작가인 제가 하는 것이죠. 앞으로도 카메라를 들 수 있는 한 저의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전시는 31일까지. 문의 053-751-8089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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