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민주주의는 없다
얌전한 민주주의는 없다
  • 승인 2021.01.13 20: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민주주의의 대변국 미국에서 트럼프 지지자들 다수가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 들어가서 난동을 부린 사건을 보고 놀랐다. 여야 정치인끼리 국회에서 싸우는 장면이나 노동자 등의 대규모 집회를 자주 보아 온 터라 놀랄 일이 아니지만 대통령 선거에 불만을 품은 트럼프 지지파 백인들이 부린 갖가지 행패는 미국을 부끄럽게 하고도 남는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보통 사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사건의 뒤에는 현 대통령 트럼프가 있었다.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면서 승복하지 않고 추종자들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등 군중을 선동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 사건의 단초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4년 임기의 대통령이 재선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나라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트럼프에 대한 이미지는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때로는 기인적인 행태를 보여주곤 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미국에도 이른바 ‘빠’ 같은 극단적인 세력들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빠’는 이념을 우선으로 자기세력을 확장하는 비공식조직에 가깝다. 그들은 외면을 피하면서 내적으로 조직을 견고하게 만들어 간다. 획일적인 조직 운영으로 구성원들을 엄격하게 묶어놓고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정치세계에 ‘빠’가 다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리더의 이념을 추종하게 되면 ‘빠’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지고 이념을 달리하는 반대 세력과는 늘 등을 진다. 그들의 결속력은 상부상조에 바탕을 두므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에 ‘문빠’가 있듯이 미국에는 ‘트빠’(트럼프빠)가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미국과 같은 공권력이 강한 나라에서 의회침입자들에 의해 의회가 점령당하는 것은 ‘트빠’들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트빠’들은 거의 모두가 백인들이다. 난동 장면을 보면 백인 우월주의가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의식적으로 흑인 등이 주축인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줘야 하는 좌절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치적 환경은 다르지만 한국의 ‘문빠’와 미국의 ‘트빠’가 정치공학적 동질감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면 잘못된 생각일까.

‘문빠’와 ‘트빠’의 특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문빠’의 생성은 한국의 특이한 정치환경에서 비롯되었다. 정권의 교체가 일반적이 아닌 매우 복잡한 상황에서 이뤄졌고 이념에 사로잡힌 정치세력들이 정권수립에 힘을 보탬으로써 자기 위상을 높이는 일에 온 정열을 쏟은 것이다. 그 결과 ‘문빠’가 국가기관 곳곳에 안착하면서 자기 터전을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문빠’는 나라 구석구석에 심어져 있다. 입법·사법·행정부를 비롯하여 국내 많은 공기관에 고착해 있고 그 외 언론, 사적인 대·소 조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념을 바탕으로 내편을 무조건 감싸고 반대편에 대해서는 엄격한 선을 긋는다. 정치권력자는 그들을 교묘히 이용·보호하면서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법에 기초하여 정치·행정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정치적 탐욕에 의해 망실되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임기가 1주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미 하원은 내란 선동혐의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결과에 따라 트럼프는 미 정치사에서 불명예 대통령으로 길이 남을 것이며 2024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그에게 치명상을 줄지도 모른다.

미국의 사태를 보면서 이제는 얌전한 민주주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문대통령의 임기가 1년 여 남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레임덕에 진입했다는 느낌이 든다. 대통령의 인기도가 자꾸 떨어지고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다.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늘 40% 수준을 유지하는 결속력은 ‘문빠’들의 대동단결에서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 사회를 여러 갈래로 분파시켰다. 그러면서 ‘문빠’에 속한 인물들을 여러 방면으로 쓰고 있다. 인물이 없으면 회전문 인사를 당연시 한다. 소통·통합을 실천 못하는 문대통령은 이제 눈을 바로 떠야 한다. 장관 등을 청문회 절차를 어기면서 임의 임명하고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마구 통과시키는 일 등은 소통과 통합을 아예 무시하는 처사다. 엊그제 대통령 신년인사의 단순함은 대통령의 현재 마음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