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고의가 아니었음을...
<대구논단> 고의가 아니었음을...
  • 승인 2010.06.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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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효 진 스피치 컨설턴트

남아공 월드컵 8강 진출 나라들이 모두 확장된 가운데 갈수록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이 시작된 지 겨우 10일 만에 조별예선에서 나온 옐로카드가 무려 91장. 옐로카드가 경기당 평균 3.5개로 나와 경기 흐름이 자주 끊겨 수비적인 축구를 유도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동안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가 끝나면 경고가 모두 소멸됐으나, 이번 월드컵은 조별리그에서의 옐로카드가 8강 경기까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즉, 8강 이전까지 누적 경고 두 번이면 곧바로 다음 경기 출전이 금지된다. 이러한 월드컵 경기 규정이 변경된 배경에는 조별 리그에서도 선수들의 비신사적인 행동을 막겠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강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파울인 듯 한 태클이나 거친 플레이를 한 선수들은 양손을 번쩍 들고 `무죄’ 임을 주장하면서 주심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또 카드를 받으면 항의하거나 거칠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통사정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상대 선수에게 폐를 끼치고 말았을 때, 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의가 아니었음을 먼저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나 일부러 그러했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면 더 일이 크게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사죄하고 이유를 말하기 전에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한마디를 덧붙이면, 상대의 불쾌감을 완화시키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자인 K. A. 더치의 실험으로 증명됐다. 그는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먼저 갑이란 그룹의 아이들에게 그림 퍼즐을 하게 했다. 거의 다 끝나갈 무렵에는 아이들을 방 밖으로 내보내고, 또 다른 을이란 그룹의 아이들을 들어오게 한 후 그림 퍼즐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게 했다.

그런 후 갑 그룹의 아이들 일부에게는 을 그룹 아이들이 “퍼즐을 도우려고 하다가 잘못해서 부서지고 말았다.”고 알리고, 또 다른 아이들에게는 을 그룹 아이들이 “일부러 그랬다.”고 알렸다. 그러자, `일부러’라고 알게 된 아이들의 불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그 후의 행동에도 공격적이 되었다고 한다. 대신 `잘못해서 실수로’라고 알게 된 아이들은 용서하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이 실험에서 밝혀진 것처럼 자신이 입은 피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고의인가 아닌가에 의해 상대에 대한 행동도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폐를 끼치고 말았다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사실은 이런 사정으로...”, “악의가 있어서 한 일은 아닙니다만,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폐를 끼치게 되고 말았습니다.”하고, 우선은 자신이 고의로 상대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는 말을 표현한 다음 성실하게 사죄하는 것이 좋다.

물론 변명이라는 것은 그다지 좋은 뉘앙스를 갖는 말은 아니다. 핑계를 대며 발뺌한다든가, 정에 호소해 용서받거나 하는 마이너스 의미로 사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명을 할 때 이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일부러 실수를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죄송합니다.’라는 이 소박한 말 한마디면 문제가 해결될 때가 많다. 그런데, 굳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밝히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은, `죄송합니다.’라는 한마디의 힘보다 진심을 담아 주저 없이 사과의 뜻을 표하면 상대에게 진심이 전해져 기분 좋게 용서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남아공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도 옐로우 카드가 나오려고 할 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라고 주심을 향해 용서를 구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선수의 마음을 주심이 알아줘 용서받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축구란 용서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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